◎지나친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 노출/“금권에 제동” 국민공감 계기/당국·재계·노사 모두에 교훈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세금납부 거부소동은 「3일천하」 해프닝끝에 법정투쟁 포기와 정 회장 체제유지라는 정경간의 타협으로 낙착,수습의 가닥을 잡은 셈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부문에 걸쳐 긴 「여운」을 남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직접적 발생원인이 「정경유착」 풍토속에서 자기 힘을 과신한 재벌이 원칙없는 세정의 허점을 물고늘어진 결과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통해 대다수 국민들이 견제없는 「금권」의 위력과 횡포가 어떻게 표출되는지 똑독히 보게된 사실 바로 그것이 국가장래를 위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이처럼 위험한 금권행사의 주체인 재벌그룹과 경제력 집중현상을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으며 그 폐혜를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빠른시일내 어떤 방식으로든 착수돼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룬 셈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사태의 직접원인으로 떠오른 세정허점 보완문제는 어찌보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과제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세법개정 때마다 관계전문가들이 지적해왔듯 국내의 조세관련 법령 및 제도는 서릿발같은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정부 고위관계자는 『현행 상속·증여 과세제도를 원칙대로 엄정 적용하기만해도 3대 이상 부세습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세제보완 등 새삼스런 호들갑은 필요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이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여건에 맞춰 기존세제의 「사각」 부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술적 대응노력까지는 부인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서 보듯 제대로 된 제도에 근거,부과된 고지서를 받고 납세자마다 천차만별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현실은 무엇때문인가.
대부분 국민들은 『세금이란 납세자의 노력여하에 따라 세액숫자까지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상식에 익숙해져 있는게 현실이다.
하물며 정경유착의 해묵은 관행 덕분에 국회건 정부건 맘만 먹으면 주무를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젖은 「회장님」이 사상최대 액면의 이례적 세금추징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불보듯 뻔한 일.
결국 이번 사태는 일차적으로 자의적이고 원칙없는 조세행정이 하루빨리 보다 정상화되도록 촉구하는 중요한 계기로 부각될 전망이다.
아울러 정경유착의 반대급부가 돈줄 대는 재벌에겐 세금납부상 특혜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서민 입장에선 자기가 낼 세금부담이 더 커질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전기가 됐다. 따라서 정경유착 폐혜에 대한 이같은 국민자각이 투표행위로 구체화된다면 「돈안드는 정치」 풍토를 앞당겨 정착하는데까지 이번 사태의 교훈을 승화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가 국민 자각의 마음속에 가장 선명히 남긴 인상은 무엇보다 공룡처럼 비대해진 재벌의 횡포와 그 비대과정인 경제력 집중가속 현상에 대해 강력한 제동장치를 마련할 때가 됐다는 「공감」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실 이번 사태진행중 나타난 재벌의 파격적 행태는 경제력 집중현상에 부수되는 수많은 폐해가운데 그야말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학계·관계를 비롯한 경제관계자들은 우리나라 재벌이 세계 어느국가에도 유례가 없는 기형적 기업결합 형태를 갖고있다고 보고있다.
국내 모재벌의 경우 외국 잡지광고에서 『영어 알파벳의 A산업에서부터 Z산업까지 전업종에 걸쳐 활약중』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 재벌기업은 그룹규모 전체를 묶어서는 세계 수십위로 평가된적이 많았지만 어느 특정업종에서 독자적 기술과 품질·상표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선망을 모은일은 거의 없었다.
삼성·현대 등 국내 5대 재벌의 경우 국가예산의 2배를 훨씬 웃도는 막대한 자산과 화학·전자·자동차 등 성장유망업종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십개 계열기업은 오직 오너 한사람의 판단에 따라 경영전반이 좌우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7차 계획중 기업경영의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현행 국내재벌의 경영상 문제점은 자못 심각하다.
자금면에서 그룹전체 적자금관리로 적자계열사에 무작정 지원을 계속하는가 하면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덕택에 「땅짚고 헤엄치기」식 금융대출을 독점하고 있다.
인력관리면에선 다양한 업종의 계열기업이 자체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중소기업의 우수인력을 고임금 미끼로 마구 끌어가 임금상승을 부채질한다. 더구나 이미 수차례의 대형 노사분규에서 보듯 노사협상과정서 오너 한사람만 결정력을 행사함으로써 산업평화 조기정착에 구조적 장애물이 된지 오래다.
자칫 정부와 재벌간의 대립구도로 오해되기 쉬운 이번 사태는 당국과 재계 전문경영인 근로자 등 대부분 경제주체들에 반드시 풀어나가야할 많은 「숙제」를 남겼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유석기기자>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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