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적인 주간지인 뉴스위크는 최근에 한국어판을 내놓으면서 한국인의 「과소비」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참으로 재빠른 편집이다. 뉴스위크는 「과소비」 문제가 우리사회의 큰 관심사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과소비」 이야기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더 많은 광고를 실어 결과적으로는 소비를 더욱 부채질한 셈이다.미국 주간지의 상술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과소비」란 어떤 소비를 두고하는 말일까?
우선 필요이상의 소비를 과소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가 바로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중의 하나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어느정도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에 따라 「필요」의 수준이 다를 수 있는데 각자가 알아서 자신의 뜻대로 「필요」한 만큼 소비해도 된다면 「과소비」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무엇이 얼마만큼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제3자가 정해주기도 어렵다.
이런 문제때문에 사람들은 「필요」대신에 「능력」에 따라 소비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능력은 곧 지불능력 또는 구매력을 뜻하므로 경제학에서는 「수요」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과소비」란 「능력」이상의 소비,즉 분수에 넘치는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능력은 각 소비자의 경제력을 말하는데,소비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사치스럽거나 값비싼 물건을 소비한다고 해도 과소비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곧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서의 소비윤리에 대한 기본 생각이라는 점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사치와 낭비도 지불능력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T·Veblen)은 1899년에 발표한 「유한계급론」에서 사람들이 낭비 및 사치하는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특 「유한계급에 속하는 사람에게는 값비싼 물건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가시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블렌에 의하면 사치와 낭비는 양적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명예와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과소비라는 개념보다는 「가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이 더욱 적절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경우에도 사치와 낭비는 사회적 경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값비싼 옷을 입든가 국회의원들처럼 금배지를 달든가 해야 제대로 사람대접 받는 사회에서 돈은 있고 금배지는 없는 사람이 값비싼 옷을 입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서 과소비하지 말라고 아무리 외친다고 해도 별로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사치와 낭비를 없애려면 우선 사회적 지위와 외형적인 물적 상징과의 연관부터 끊어야 한다.
특히 사회적인 고하를 없애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대접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네덜란드나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처럼 비교적 가장 평등한 사회들이 사치와 낭비가 가장 적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일일은 아니다. 요는 자신이 내면적으로 소지하고 있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것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이라는 진리를 믿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사회적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사치와 낭비를 하는 일은 안해도 좋을 것이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대접받는 나라가 되고 싶어서 필요이상으로 분수에 넘는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올림픽을 정성껏 치른 것은 좋지만 과연 우리나라가 그동안 제공해온 경제협력의 규모가 우리 능력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기위해 쓴 「가시적 소비」는 아닌지 정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라안의 살림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부는 한편 국민들에게는 과소비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위신을 세우고 지도자들의 지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베블턴이 지적한 「가시적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본질적으로 사치와 낭비는 자신이 없는데서 나온다. 스스로의 값어치에 대해 자신이 없을때 타인들의 평가에 의존하게 되고,타인들의 평가에 의존하게 되고,타인에 의한 평가를 높이기 위해 가시적인 소비를 범하게 된다.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식을 자랑하려고 하듯이 마음이 허약한 자는 겉으로 치장하기에 바쁘다. 물론 사람이 미를 추구하거나 멋과 맛을 찾지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것을 찾는 의지의 표현이 있다. 그리고 그곳은 값비싼 물건을 쓰는 것을 남들이 보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사려는 저속한 충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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