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나라 어느정권이건 임기의 마지막 해에는 「레임덕」(절름발이 오리·권력누수)현상이 나타나게 돼 있다. 심지어 미국처럼 대통령 연임제의 나라의 경우 제2임기 자체를 레임 덕으로 보기도 한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에게는 기대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으므로 그의 권위와 권능은 낙조처럼 힘을 잃는다. 보수회귀의 역사적 조류를 타고 80년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도 그 임기말년인 88년은 관례적으로 보냈다. 그는 탁월한 재능은 없었으나 미국인들의 대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즐겁게 해주는 「계산된 뱃심」과 배우출신으로 몸에밴 연기적인 제스처로 대중적인 단기는 떨어질 줄 몰랐다. 그러나 인기가 힘이 되지는 못했다.우리나라도 내년은 6공의 마지막해다.
레임 덕 현상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단임제의 대통령 책임제 아래에서 최대의 제도적 문제는 레임 덕 기간의 극소화다. 우리나라와 같이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국가들도 동병상련이다. 단임제의 원조격인 멕시코는 지금껏 묘수를 찾지 못했다. 6공도 3,4월로 예정된 총선거의 공천과 차기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명이 끝나게 되면 권력 누수가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취약한 우리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인플레,수출부진,인력난과 취업난,쌀 등의 개방압력,자본시장개방,금리자유화 실시,고속도로 체증 등 사회간접자본 부족심화,기술개발 등 타결해야할 경제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정부·기업·근로자들이 3공 체제 아래에서처럼 일사불란하게 한몸같이 돌아가도 난관의 돌파가 어려운 여건이다. 지금처럼 무수한 이익집단들이 서로 제목소리를 높이는 민주화의 다원화 시대에는 레임 덕 현상이 없더라도 상이한 집단간의 이익의 상충을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정부의 이 조정기능이 앞으로 더욱 약화될 것은 분명하다.
벌써 레임 덕 현상의 조짐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정책구상이 야당은 그만두고라도 여권내의 당·정 협의과정에서 당의 주장에 밀려 보류되거나 백지화되기가 일쑤다. 우선 총선에서의 당선이나 승리가 바쁜 민자당의원이나 당은 표를 깎는 정책이나 시책은 무조건 거부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경인·경수고속도로 승용차 통행제한,총액임금제,시간근무제 도입 등을 규정한 노동관계법 10개사항의 개정,산업대 개편 등 교육법 개정안 등등이 지역주민·근로자·관련대학 등 이해관계 집단들의 반대에 따라 유보되거나 철회되고 있다. 입안 자체가 행정편의주의에 따른 것이고 또한 입안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치 않는 졸속경향도 보이고 있어 원천적으로 기폭성을 안고있는 것이 많다. 일례로 제주도 개발 특별법은 정부측에서는도 대통령 공약사업이라고 하여 강행할 방침을 세우고 있으나 제주도민들의 조직적 반대에 부딪쳐 그 추이가 주목된다. 반드시 레임 덕 현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해도 청와대와 내각자체가 총선거를 앞두고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일부 현직각료들과 수석보좌관들의 출마와 이에따른 개각과 관련,경제부처를 포함한 행정 각 부처가 무중력 상태에서 표류하기가 쉽다. 이미 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곧 있을 개각에 의해 새로 조각될 내각은 선거관리 내각에 불과할 것이다. 내년에는 기존의 정책을 관성적으로 집행하는 선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세추징불복은 시각에 따라서는 6공의 레임 덕 현상을 부각시켜줬다는 건해도 있다. 미국과는 달리 정부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권력누수의 손실이 크다. 이에대한 제도적 보완으로 관료체제의 강화가 시급한 것 같다. 일본의 관료체제 같이 정치적으로 독립한 유능하고 자긍심 있는 관료집단을 만들어야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