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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한국군사령관­쩐박당 월맹 남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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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한국군사령관­쩐박당 월맹 남부사령관

입력
1991.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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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맞수적장」 서울서 “백발재회”/68년 사이공공격 명성… 현 사과원 부위장/면식없었으나 금세 “오랜 친구”/“구원씻고 수교·경협등 진전을”월남전당시 서로를 적으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한국군과 월맹군의 맹장들이 종전 16년만에 백발의 노신사로 만나 구원을 씻고 손을 맞잡았다.

지난 68년초 월맹군의 「구정공세」때 주월 한국군사령관이었던 채명신씨(65)와 사이공공격을 맡았던 월맹 남부군사령관 쩐 박 당씨(Tran Bach Dan g·65)는 10일 상오11시 서울 힐튼호텔 2층 설악산룸에서 만났다.

베트남식 베이지색 정장에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먼저 도착해있던 쩐씨는 훤칠한 키의 채씨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면식은 없었으나 전장에서 서로의 명성을 너무 잘 알고있던 두 노장군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주위에서 소개도 하기전에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고 인사를 나눈 두사람은 곧 오랜 친구와 같은 표정으로 양국의 변화와 경제협력 등을 이야기했다.

쩐씨는 『나는 아직도 영원한 사회주의자』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념을 떠나 양국국교가 수립되고 교류가 확대돼 양국의 젊은이들이 마음대로 오가는 시절이 빨리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고 채씨는 『당연한 말씀』이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채씨가 『월남을 떠난뒤 즐겨먹던 「능막」 「자이오」 등 그곳 음식맛이 그리워 혼났다』며 『쩐 장군은 「능막」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혈색이 좋다』고 치켜올리자 쩐씨는 파안 대소했다.

두사람은 간간이 월남전 당시 추억을 얘기했으나 정작 전투상황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베트남남부 출신으로 일찍이 혁명운동에 가담,16세 어린나이에 항일유격대 사이공지구사령관을 지낸 쩐씨는 45년 일제패망과 함께 베트남공산당 창당에 참여,프랑스치하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죄수들을 지휘해 탈옥하는 등 화려한 투쟁경력을 쌓았다. 월맹정권 수립후 베트남남부 민족해방전선 대표를 맡은 쩐씨는 64년 월남전이 발발하자 남부군 사령관으로 변신,68년 「구정공세」때 사이공의 미 대사관을 일시 점령하는 등 「기습전술의 귀재」라는 명성을 얻었다.

채씨는 65년부터 69년까지 초대주월 한국군사령관을 맡아 탁월한 작전능력으로 한국군의 용맹을 떨쳤다.

이날 두사람의 만남은 주월 한국대사관영사였던 안희완씨(53·전국투자금융협회 총무부장)가 주선했다.

75년 4월 종전당시 대사관을 지키다 월맹군에 붙잡혀 호치민시내 형무소에 억류돼 80년에야 풀려났던 안씨는 귀국후 한월교류를 돕다 우연히 쩐씨가 지난 7월3일 일정으로 관광차 방한한 사실을 알게돼 채씨와의 만남을 제안했다.

쩐씨는 『세월도 많이 변했으니 당시 한국군을 지휘했던 채 장군을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고 이를 전해들은 채씨도 『직접 만나 과거의 불행을 깨끗이 청산하고 친분을 맺고 싶다』고 환영했다.

종전후 쩐씨는 민간인으로 돌아가 현재 베트남 사회과학원 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채씨는 71년 대장으로 예편,스웨덴 그리스 브라질대사 등을 역임하고 평범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점심을 나누는 등 3시간에 걸친 만남을 정리하며 「두나라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을 다짐했다.

지난 9일 입국한 쩐씨는 경주·울산 등을 관광한뒤 오는 17일 출국할 예정이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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