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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학로 뒤에 “폐가마을”/도시 설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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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학로 뒤에 “폐가마을”/도시 설계지역

입력
1991.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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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축 어려워 “퇴락”/무너진 지붕… 금간 벽… 빈집들/연탄대신 장작불때고 텃밭재배/주민들 “뜯어고쳐서 살수있기를”/연건동 21통 백50채서울의 한복판에서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텃밭에 분뇨를 주어 무·배추를 가꿔 먹는다. 사람이 살지않는 폐가는 늘어만가고 남아있는 집들도 지붕,서까래가 내려앉아 가랑비조차 가릴 수 없다.

서울의 문화1번지 동숭동 대학로의 화려한 모습 뒤편에 이농으로 황량해진 벽지마을이나 50년대 이전 도시 변두리를 연상케 하는 폐가마을이 숨어있다.

대학로와 서울대병원의 현대식 고층병동 사이인 종로구 연건동 21통31∼139번지)에는 지은지 1백년은 족히 넘는 고가 1백50여채에 3백50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고 있다.

대학로의 널찍한 8차선 도로에서 리어카 한대 지나기 어려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문화의 냄새대신 재래식 화장실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갈라진 담과 벽 틈새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곳이 이처럼 폐가촌으로 변하기 시작한것은 주변에 대학로가 조성돼 문화의 거리로 바뀐 70년대말부터. 화려한 문화시설들이 주변에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초라해진 마을은 84년에 서울시가 이 일대를 도시설계 지역으로 고시함에 따라 대책없는 퇴락의 시대를 맞게됐다.

비문화시설은 들어설 수 없고 6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으며 건물 외관도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한다. 당연히 투자가치가 없어 집이나 땅을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게됐다. 증·개축도 자유롭지 않거니와 대부분이 노점상,막일 등으로 생계를 간신히 꾸려가는 주민들로서는 그럴만한 재력도 없다.

대학로에서 불과 50여m 남짓한 동명슈퍼주인 임호택씨(78)는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있다. 5년전 갈라진 구들틈새로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일가족이 혼난뒤로는 이웃 폐가의 기둥,문짝 등을 떼어내 장작으로 패 재어두고 있다. 임씨는 지난해 장마때 대들보가 썩어 부러지는 바람에 쏟아져 내린 기왓장에 허리를 다쳐 굴속같은 방안에 몸져 누워있다.

이 동네에 4대째를 살고 있다는 우성렬씨(54·노점상)의 26평짜리 집은 3년전 부엌옆 골방이 저절로 주저앉았고 집옆의 축대는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다.

집을 고쳐쓸수 없는 주민들이 저마다 난맥처럼 전기선을 끌어다 전기장판을 들여놓고 LPG를 연료로 써 화재에 무방비 상태일뿐 아니라 폐가는 불량청소년들의 본드 흡입장소가 됐다.

몇년전부터 집을 버리고 떠나는 주민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집을 내놓아야 팔리지도 않기때문에 아예 버려 둔채 변두리에 셋방을 얻어 나가고 있다.

집값은 시세조차 형성돼있지 않아 주민들은 그저 주변 땅값이 최하 평당 2천만원 이상이니 위치로보아 5백∼6백만원 정도 될것으로 짐작만하고 있을뿐이다.

주민들의 소원은 이곳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재지정,『뜯어고쳐 살수있게만 해달라』는 것. 주민들은 지난 3월 종로구청에 이를 건의,5개월만에 건설부산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소방도로 정비 및 개설계획,주변과 조화를 이룰 건축물 정비계획을 구체적 도면으로 제출하라』는 통보에 주민들은 어이가 없었다. 『당장 집이 무너져가는데 장기간이 소요되는 종합적 계획은 다뭐며 생계조차 힘든 주민들이 수천만원의 용역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대학로의 화려한 외양에 가려진 도시의 섬 연건동 주민들은 당국의 무관심을 탓하며 하루하루 힘겨운 적빈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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