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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묵은 적십자스티커/김창열 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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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묵은 적십자스티커/김창열 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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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때 들고 다니던 가방이 옷장 속을 뒹굴고 있다. 요즘은 좀처럼 쓰는일이 없는 그 가방 옆구리에 태극기와 적십자를 함께 도안한 스티커가 붙여 있다. 72년 여름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적 첫 본회담의 흔적이다.이어졌다 끊어졌다,그래도 남북 왕래가 거듭되면서,우리 기자들이 평양을 다녀 올 적마다,나는 그 낡은 가방을 생각한다. 평양을 다시 취재하고 싶어진다. 겉보기에는 많이 달라진 것도 같은 평양이,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왕래는 있으되 진전이 없는,그 사이 남북관계 20년의 덧 없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달 제4차 남북총리 회담을 보는 심정도 꼭 그러했다. 열달만에 열리는 회담에 거는 『혹시나…』의 기대치가 좀 높았던 탓도 있지만,우리측 정원식총리가 말끝마다 이산가족 문제를 제기하고,70살 이상 고령자들의 상봉만이라도 성사시키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한결 더 했다. 72년 첫 평양행때,이제는 20여년 이산의 아픔이 풀릴 모양이라고 나라 안이 온통 들뜨기까지 했었는데,그로부터 다시 20년을 지나서도 겨우 「70살 이상 고령자」를 말해야할 지경이니,착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정 총리가 말한 「70살 이상 고령자」란 바로 72년 그 무렵의 50대들 아닌가. 그 무렵의 「70살 이상 고령자」를 꼽는다면,그중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처럼 일이 더디 진전된다면,지금의 「70살 이상 고령자」인들,살아서 혈육을 상봉할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이산가족 문제는 이처럼 「시한」이 걸린 다급한 문제 아닌가.

지난달 남북총리회담의 성과는 보기 나름,말하기 나름인 것 같다. 진전이 있었다면,양측의 제안을 통합하여 하나의 합의문건을 도출하자는데 합의한 것,다음 총리회담을 기약하고 사전의 실무접촉을 갖기로 한 것 등이 겠으나,난제는 난제대로,이견은 이견대로 남아 있으니,저들 말대로 『너무나 허전하고,그 수확이 적었다』고 해서 지나칠 것은 없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만을 떼어 놓고 본다면,단일문건 합의로 다급한 이 문제의 우선해결이 더 어려워진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단일문건 합의는 「교류협력」과 「불가침」 등 양측 모든 제안의 일괄타결·동시실천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이산가족 문제마저도 언제 풀릴지 모를 난제 틈에 얽혀 백년하청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제3차 총리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시했던 이산가족 문제의 우선해결=남북적회담의 조속재개 요구보다 후퇴한 것 아닐까. 이 결과는 분명 북이 바라는 바와 일치한다.

여러가지 징후로 보아,이산가족 문제는 북이 조속해결을 가장 꺼리는 의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번 총리회담에 내놓은 북측 의안에도 이 점이 잘 나타난다. 우리측 「합의서안」 제3조가 『쌍방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아무런 조건없이 즉각 실시하며 이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추진한다』고 한데 대하여,북의 「선언안」은 그 제17조에 『인도적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실현하며,흩어진 가족 친지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꼬리를 빼고 있는 것이다. 한적의 적십자회담 재개요구를 줄곧 외면하고 있는 북적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북은,누구보다도 이산가족을 위하는 척,가족방문을 미끼로 해외동포를 끌어들이도 데는 열심이다. 북행길 우리 대표단원의 가족을 느닷없이 상면시키기로 한다. 그 행태를 보자면,이산가족은 시급히 끝장내야 할 고통의 당사자가 아니라,한갓 「볼모」나 같다. 저들로서는 이산가족의 재결합·자유왕래가 폐쇄체제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리란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니,이산가족 문제의 남북 합의는 쉬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는,어렵다고 해서,또는 상대방에서 꺼린다고 해서,뒷전으로 돌려도 좋은 그런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북이 앞세우는 정치와 군사,남이 앞세우는 경제와 교류보다 앞서는 인도·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흔히 1천만이라고 이르는 이산가족의 숫자로 보나,그중에 연로한 사람이 많다는 생리적 시한성으로 보나,그들의 고통을 달리 풀 길이 없다는 사정을 보아서나,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간의 제1 의제로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다면,우리 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가는 것이 옳다. 그런 문제야말로 남북당국간 대화의 부수적인 과제이거나,인적교류의 한 항목이거나,회담장 밖에서나 거론할 의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4차 총리회담을 앞두고,여론은 전에 없이 이산가족 문제에 집중된 듯했다. 그 까닭중의 하나는 5·25 납북 인사들의 최후가 알려진 것이었다. 생사조차 알길없던 이들의 비참한 죽음과 명일이 확인돼,새삼 장례절차를 갖추고 제때에 제사나마 지내게 된 것이다. 그중 두드러진 예가 지난 5일 비로소 유발을 국립묘지에 모신 고당 조만식선생의 경우였다. 이런 가운데 납북인사 소식을 북에 요구하도록 정부를 독촉하는 여론이 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어찌 그런 비원이 납북인사 가족에게만 국한 될 것인가.

여론이 그러하다면,정부로서는 의당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 어렵사리 날짜가 잡힌 11일의 총리회담 실무접촉과 본회담에서부터 이산가족 문제를 비중있게 거론하는 것이다. 총리회담 의제순위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순위를 높이고,남북적회담의 재개를 강력하게 요구하며,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사업이라도 당장 시작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차라리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대화의 시금석으로 삼는것이 옳다. 이산가족 문제를 외면하는 동안 북은 평화통일의 의지도,개방의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면 된다는 뜻이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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