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나 수상의 외교활동은 정치적이거나 상징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외교적인 문제는 담당각료나 외교실무진에 의해 협의,해결되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행정수반의 외교활동은 정치적으로나 의례적으로 반드시 필요할 경우의 극히 「예외적」 개입에 속하고,또 속해야 한다. 부시 미국대통령이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4개국 순방여행을 갑자기 취소하는 외교적 사건에서 우리는 이른바 정상외교의 정치적 의미를 또한번 생각하게 된다. 부시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20여일 밖에 남지않은 방문스케줄을 취소한 것은 「의회 일정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했다.그러나 그의 잦은 해외나들이가 최근 비판의 도마위에 오른 때문이라는 해석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월말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미국 역사상 17번째의 해외나들이라는 「신기록」을 세웠었다.
89년초 그가 취임한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공산권이 무너지고,동·서독일이 통일되는 등 세계사의 전환이 있었던 만큼,미국대통령의 잦은 해외나들이는 당연했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의 지도자로서 부시대통령이 최고의 영예를 누린 것은 아무래도 걸프전쟁때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가 80%라는 기록적인 지지율로 인기를 누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외교란 어디까지나 국력을 바탕으로한 정치요 흥정일뿐이다. 행정수반의 정상외교가 지나치게 남용된다면,따라서 「예외적 개입」의 한계를 벗어난다면 무의미한 국력의 낭비요 「우민정치쇼」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런 비판은 국내의 국가경영이 부진할수록 더욱 강력하게 제기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 경제의 악화가 그의 화려한 외교행각을 밑뿌리째 흔들고 있다. 걸프전쟁이 끝난뒤 기대됐던 경기회복은 지지부진한 반면,실업은 늘어나 10월 현재 7.8%를 기록했다. 그가 취임했던 89년의 연말이래 2년동안 1백7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또 실질소득도 54년이후 처음으로 1년 내내 계속 떨어졌다.
걸프전쟁 직후 부시 대통령의 기록적인 인기가 급락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5일 보궐선거에서 손버그 전 법무장관의 패배로 뒷받침됐다. 미국민은 이제 부시 대통령의 기록적인 「나들이 정치」가 바로 우민정치쇼에 통한다는 비판을 한 셈이다.
한국에서도 5공화국 이래 행정수반의 해외나들이가 전례없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나들이 정치」의 결말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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