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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대표로 “깊이 사죄”/내한 마쓰모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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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대표로 “깊이 사죄”/내한 마쓰모토씨

입력
1991.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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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박 소년」 이복형 만나/“8세 나이에 토공부로 차출/격납고 공사중 터널속 압사/위령비라도 세워 일인 후세들에 교훈삼고 싶어”8세 나이로 징용당해 일본 북해도 케네베츠(계근별) 비행장 조성공사중 숨진 조선인소년 박전일랑군(한국일보 10월31일자 22면)의 가족들을 찾기 위해 지난 4일 내한한 마쓰모토씨(송본성실·64·북해도 교육대 강사)가 5일 낮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박 소년의 이복형 종석씨(66·서울 중랑구 중화1동 122)를 극적으로 만났다.

마쓰모토씨는 신장염으로 입원중인 박씨에게 『일본인을 대표해 깊은 사죄의 뜻을 전한다』며 『빨리 쾌유해 일본에서 열릴 위령제에 꼭 참석해 달라』고 박씨 부부를 초청했다.

이번 만남에서 향토사가인 마쓰모토씨가 북해도 네무로(근실) 근처 시베츠(표진) 마을의 호적과 근처에 있는 쇼코우지(정광사)라는 절에 보관돼 있던 화장허가서에서 밝혀낸 박 소년은 당시 8세였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마쓰모토씨가 이 사실을 지난해 발표,공동통신·북해도신문 등 일본 매스컴에 보도되자 일부 일본인들은 『8세에 비행장건설 공사장에 징용됐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며 항의가 빗발쳤었다.

이에대해 박종석씨는 해방후 아버지 박대봉씨가 북해도 징용에서 돌아와 자신에게 『북해도에서 낳은 배다른 동생이 8살 어린 나이에 비행장을 건설하다 굴속에서 죽었다』며 애통해 했다고 말했다.

그간 마쓰모토씨가 밝혀온 박 소년의 사망원인도 공사중 얻은 폐렴의 악화가 아니라 격납고건설 터널에서 압사한 사고사였음이 밝혀졌다.

이 공사장에는 당시 박 소년의 아버지 등 한국인 징용자 2천여명이 동원돼 있었다.

또하나 새로운 사실은 박 소년이 그냥 징용된 것이 아니라 「납치나 강제연행」 당했다는 점이다.

아버지 박대봉씨는 아들이 실종됐으나 비행장공사에 틈이 없어 찾지도 못했고 박 소년이 숨진뒤 공사장에 함께 있던 친구가 『굴속에 당신 아들이 죽어 있는 것 같다』고 통보해주어 시체를 인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쓰모토씨가 가져온 사망노동자들의 명단에는 박 소년이 「노무자」가 아닌 「토공부」로 기재돼 있다.

마쓰모토씨는 당시 노무자의 경우는 지상에서 공사장도 이동할 수 있는 비교적 덜 힘든 일을 했으나 「토공부」는 땅속에서 터널작업 등을 했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움직일수도 없는 감옥생활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요미우리(독매)신문·북해도신문·NHK기자 등과 내한한 마쓰모토씨는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도 찾아가 자신의 보관기록을 전달했다.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무를 마쓰모토씨는 박 소년 외의 사망자 4명의 유족들을 찾기 위해 6,7일 대구·칠곡·성주·의성 등을 강행군할 계획이다.

마쓰모토씨와 그의 후원회는 태평양전쟁중 가장 희생이 많았던 케네베츠 비행장건설에 동원됐던 한국인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카와이기호씨(하합의봉)나 당시 한국인 학생들을 찾고 있다.

마쓰모토씨는 『이들을 만나 함께 당시 현장을 방문,위령비라도 세워 어두운 역사를 모르는 일본인 후세들에게 교훈으로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남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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