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결실「합의서」와 「봉변」. 평양에서의 제4차 총리회담을 상징하는 두가지 결실이다. 「합의서」를 북측의 변화로 인한 회담의 성과이자 앞으로의 희망과 기대의 요소로 본다면 「조직된 봉변세례」는 북측의 「무변화」에 대한 실망과 앞날의 난관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두가지의 상반된 요소중 어느 것이 실상이고,어느 것이 허상인가. 두 가지가 다 실상이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가. 다음 회담에 임하기에 앞서 이런 것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
한데 정부는 모처럼의 「합의」를 필요이상으로 평가하는 것같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총리회담사상 처음으로 「공동발표문」이 나오고 「합의문」명칭과 형식에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잘 가꾸어 나아가야 할 소중한 싹이다.
그렇지만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도 합의를 낙관하거나 서둘러서는 안된다. 판문점의 대표접촉에서 다루어질 의안들은 쟁점투성이의 사안들이고 무엇보다도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 본질적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회담이 순탄치 않기를 바라겠는가마는 객관적 현실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두르지 말자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는 왠지 서두르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다음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일 것이다.
적극적인 것은 좋다. 먼저 양보를 해서 상대방 양보를 끌어내고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지금 정부는 평양 총리회담의 또 하나의 결실이랄 수 있는 「조직된 봉변」의 정치적 의미를 깊이 살피지 않고 있는 것같다.
「한마디 묻갔시오!」로 시작된 「봉변」에 나타난 북쪽의 통일 구호는 이젠 더 이상 「참다운 통일」에의 열망이라고 보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주체사상」과 더불어,종래의 「반미제국주의」와 「항일투쟁」 대신 「우리식대로 살겠다」는 북한식 「체제 굳히기」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되고 있을 뿐이다. 평양의 「봉변」사태는 북한이 「통일」이란 「민족적 이념」을 시대역행적인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안보」의 이데올로기로 전락시켜 놓았음을 폭로한 역설적 사건들이었다.
회의장 밖에 이러한 「희·비극」을 연출해 놓은 북한당국자의 대화자세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은 물론 남북간의 화해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렇다고 회담을 말라든가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당국자의 말처럼 콜레라를 핑계삼아 회담을 연기하는 판이니 「달래가며 회담할 수 밖에 없다」는 말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기본입장과 원칙만은 명백해야 하고 할 말은 하는 의연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남북대화의 목적은 뒷날의 통일도 통일이지만 중·단기적으로는 「남북간의 화해」와 「북한의 개방」을 촉진시키는데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와의 연결이 불분명한 양보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한의 일방적 약속파기로 5천톤의 쌀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고,북한주민들은 『소련으로 보낸 쌀을 가지고 헛소리 한다』해도 그만,북한신문·방송에 남쪽총리의 연설은 한줄도 안실려도 그만,이래서야 어떻게 양보가 화해와 개방으로 연결될 수 있겠는가.
정당한 목표가 실종된 상태에서 일방적인 양보만으로 합의를 서두르는 것은,자칫 정권차원의 공을 앞세워 민족적 대사의 방향을 그르치거나,더 나아가서는 그 「공」을 엉뚱한 다른 목적에 활용하려는 「오도된 리더십」의 발동이라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통일문제에 관한한 「씨를 뿌린자가 열매까지 거두려는 성급한 자세」는 금물이다. 「통일」이란 말 한마디 하지않고 20년동안 씨만 뿌려 통일을 이룬 독일에 남북의 당국자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 있다.
○내치에 눈돌려야
이와 아울러 정부당국은 참다운 통일에의 준비는 내정,곧 우리의 체제를 건전하게 만드는데에 있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지말아야 한다.
북한이 「흡수통일」이란 말 자체에도 신경질적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마당에 지금 「흡수통일」 운운할 필요도 없지만,그렇다고 「북한식 통일은 더 더욱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체제의 건전화 작업만은 게을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데,제4차 총리회담 기간동안 평양에서 전개된 「봉변」공세가 북한사회의 병리현상을 상징하는 것이라면,같은 무렵 남한에서 발생한 「살인방화」 「살인질주」 「돈받은 교수」와 「돈주고 공갈친 부모」,이런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 우리사회 병리현상의 상징이다. 게다가 「가라 앉는 경제」와 「내년 한해만도 네번이나 치러야 하는 돈 들고 타락된 선거」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지역감정」… 이런 것들이 모두 21세기를 침울하게 만드는 우리 국가·사회에 대한 적신호가 아닌가. 이를 방치해 놓고 남북대화에서의 「합의문서」 한장으로 「참통일」의 조건이 성숙되겠는가. 「내치」로 「통일외교」의 길을 다질 수는 있어도 「통일외교」로 「내치」를 다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통일을 위해서도 내정에도 눈을 돌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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