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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춘 본지 북한부장의 북녘 3박4일(평양,91년 가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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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춘 본지 북한부장의 북녘 3박4일(평양,91년 가을:하)

입력
199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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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도시/표정없는 얼굴들 지친 삶 역력/남 생활상에 조심스런 호기심처음 마주친 북한사람의 행색은 기자에게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평소 업무상 북한뉴스를 접하고 그래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 자부는 처음으로 만나본 북한사람들에 의해 산산이 깨어졌다.

첫 충격은 지난 22일 상오8시35분께 일어났다. 판문점에 있는 우리측 평화의 집을 떠나 북측 통일각에 도착한 기자를 처음 맞아준 북한사람은 평양체류 72시간 동안 기자의 그림자 노릇을 한 안내원이었다. 이 안내원의 차림새와 얼굴모습에서 기자는 충격을 받지않을 수 없었다.

기자의 담당 안내원뿐 아니라 통일각에 나와있는 모든 안내원들의 행색은 「통일적」으로 초라했다. 기자가 안내원들의 행색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 것은 안내원들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남측 대표단을 담당할 정도이면 북측에서는 가려뽑을 터인데도 안내원들의 차림새가 저러하니 일반주민들의 생활상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듯 했다.

기자의 짐작은 적중했다. 버스에 분승,개성시내에 들어섰을때 차창으로 비친 개성시내의 우중충하고 낡은 건물,2∼3명이 짝을 지어 느릿느릿하게 걷는 광경은 찌들대로 찌든 개성시민들의 생활상을 슬로 비디오로 재생해 보는 것 같았다.

평양에서도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북한 정권이 총력을 기울여 가꾼 평양이지만 기자의 눈에는 생활의 역동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침묵의 도시」였다.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어쩔수 없는 「피곤한 삶」의 모습이 역연했고 각종 만찬장에서 만난 평양 고위급인사들의 얼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기자가 실망한 것은 그들 모두의 얼굴에 삶의 윤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평양은 외부에 보이기 위한 거대한 쇼케이스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광복거리는 북한이 원하기만 하면 외국인들의 구경을 허용하는 그들의 자랑. 광복역앞 팔골 4거리에서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까지 이르는 5.4㎞ 거리엔 20∼30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지금은 40층 규모의 중앙 난방식아파트가 건설중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기자들을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야말로 주마간산한 광복거리의 아파트는 조잡한데다 관리상태도 엉망이어서 남쪽에서 생각하는 편의시설이 가득한 아파트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표단의 숙소인 백화원초대소 내부에는 초호화 카펫이 깔려있고 복도에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또 첫날 대표단의 만찬장인 목란관,둘째날 만찬장인 인민문화궁전 연회장,대표단을 위해 종합공연을 한 만수대 예술극장의 내부시설은 호화가 지나쳐 프랑스 왕궁내부를 연상케할 정도였다. 특히 목란관은 존재사실을 엄폐하기 위해서인듯 들어가는 입구를 일반시민들이 알지 못하도록 해놓고 건물형태도 감옥처럼 해놓았으나 내부시설은 초호화였다.

그 어려운 경제사정에 이같은 전시물을 짓기위해 일반주민들이 당한 시련을 생각하니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가 생기지 않을수 없었다.

기자가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곳은 북한정권이 가장 자랑하는 소년학생궁전에서 였다. 건물외형은 웅장하나 내부시설은 외형을 따르지 못한 이곳의 각 방에서는 「김일성 수령님」의 은전을 받은 어린소년·소녀들이 악기연주·수예·서예 등은 물론 체조·수영·권투까지 배우고 있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것도 아닌 북한만의 독특한 얼굴표정속에 마음을 감춘 어린이들은 북의 「보도일꾼」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분위기를 흐리는 것에 아랑곳없이 지도교사의 지휘에 따라 한치의 착오도 없는 일사불란함을 보였다. 웃는것도 우는것도 아닌 어린 학생들의 윤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은 정말 충격이었다.

이들 어린이들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소년학생궁전 공연장에 들어섰을때 기자는 대표단만이 관객인줄 착각했었다. 그만큼 내부는 조용했었다. 그러나 공연장에는 대표단석만 비어있었을뿐 그많은 좌석을 어린학생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앉아있은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숨소리 조차 내지 않았으나 「우리의 소원」이 마지막으로 합창되자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모든 어린이들의 한결같이 윤기없는 얼굴도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72시간의 체류중 안내원 등 북측의 일꾼들은 앵무새처럼 북한찬양 발언을 늘어 놓으면서도 『자가용이 있느냐』 『봉급은 얼마냐』 『외국에는 나가느냐』 『국내여행은 자주 하느냐』고 물어왔다.

바깥과 문을 닫고 있어도 북한 주민들도 도도한 개방의 조류를 감지하는 것 같았다.

북한정권이 학습을 통해 주민들을 틀안에 몰아넣더라도 「삶의 불만」에서 오는 욕구만은 억제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북한정권이 결코 쉽게 이룰수 없는 통일을 외치며 북한 주민들을 「통일」만을 외치도록 몰아치는 것도 「통일논리」로 욕구를 억제시키고 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쉽게 가볼수는 없으나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나라」­그곳이 바로 북한과 평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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