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망생들 벌써 「돈줄」 찾아 우왕좌왕/규제조항 현실과 괴리… 탈법 불보듯내년봄의 14대 총선에선 과연 얼마만한 돈이 뿌려질것인가. 올해들어 두차례의 지방의회선거를 치르면서 엄청난 선거비용 인플레를 경험한 출마희망자들은 벌써부터 돈걱정이 태산같다. 어느새 돈선거가 관행처럼돼버린 선거풍토속에서 싸움에 이기자면 가장 필요한게 실탄(돈)이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때마다 선관위는 법정선거비용을 공시하지만 여야가릴것없이 이것은 사후 비용신고시 숫자를 짜맞추는 지침에 불과한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타락선거가 가져올 부작용과 정치적 역기능을 우려하는 걱정과 함께 선거풍토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가고 있다.
▷여당의 실상◁
여당은 조직,야당은 바람이라는 말이있다. 우리나라 선거운동 방식을 일컫는 고전적인 표현이다.
조직,즉 사람을 움직여 선거를 치르는 여당은 그래서 훨씬 더 많은 선거자금을 필요로 한다. 금품수수·향응 등 타락양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조직을 가동하는 기본경비만해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민자당 K의원의 예를 보자. 그는 선거가 다가오자 돈걱정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농촌 출신의 초선인 K의원은 자금사정이 넉넉지도 않고 평소의 씀씀이가 큰 경우도 아니다.
K의원이 선거기간중 활용하려는 기초조직요원과 운동원수는 줄잡아 3천명정도. 물론 선거사무장,선거사무원 등 현행 선거법상의 공식운동원은 2백명 안팎이지만 그 인원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후보는 드물다.
이들 3천명에게는 한달가량의 실질적 선거운동기간에 3차례에 걸쳐 활동비를 지급해야 한다. 지난 6월의 광역의회선거때를 기준으로 보면 한번에 10만원씩 모두 30만원 정도는 주어야 체면유지가 될판국이다. 이렇게 계산할 경우 기초활동비만해도 9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밖에 홍보물 제작비,선거사무실 운영비,당원용 선물비,일상적인 경조사부조금 등에 최소한 3억∼4억원이 더들어간다. 여기에 「대상자」를 약간 확대해 식사를 대접해야할 경우가 생기고 유권자들의 각종행사에 찬조금도 심심찮게 내야한다.
K의원은 이같은 선거인플레가 선거망국론을 불러일으킨다는데 동의하지만 우선 목표는 당선이다. 그는 가능한한 돈 안쓰는 선거를 치르려하고 있다. 말단조직인 반책까지 포함해 3천명에 이르는 기초조직요원과 운동원들에게 1인당 10만원 정도의 활동비만 지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인 돈안쓰는 선거계획을 밝히자 당원중 50명가량이 벌써 탈당했다.
수도권 소도시의 A의원도 비슷한 처지이다. 기초동원 인원수를 2천8백여명으로 잡고 있는 그는 1인당 활동비를 20만원정도 지급할 생각이다. 가급적 선거비용을 줄일 생각이다. 뜻대로 될지 선뜻 자신이 없다. 공천도 무리없을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선거자금을 준비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후원회가 내년에 거두어줄 2억원(선거연도는 평소의 2배까지 기부가 가능)과 과거이월액,친구들에게 빌릴 자금 2억원정도,중앙당에서 나눠줄 지원금 등으로 꾸려갈 계획이다. 여기에는 물론 후원회의 공식적 기부금외에도 추가기부금이 포함될 수 있다. 또한 당선가능성,후보의 재력정도에 따라 ABC급으로 결정되는 중앙당의 비공식 지원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여당 의원들의 선거비용은 이처럼 10억원이 금세 넘어버린다.
▷야당의 실상◁
야당은 바람으로 선거를 치른다고 하지만 돈없이 바람이 일어난다는 것은 옛얘기가 됐다. 지자제선거를 치르면서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선거인플레는 야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물론 여당 보다는 기초비용이 덜들지만 야당의 취약한 자금동원 능력을 감안한다면 형편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야당 평균 1억5천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선거를 치렀던 지난 13대 총선과 비교하면 14대의 예상선거비용은 격세지감을 주고있다.
민주당의 경우 현재 어림잡고 있는 항목별 선거비용은 ▲선거운동원(2백명 기준) 활동비 1억8천만∼3억원 ▲후보자활동비 1천5백만원 ▲현수막 등 홍보물 제작비 3천만원 ▲선거사무소(2개) 운영비 1천만원 ▲차량·우편물·전화요금 2천5백만원 등으로 모두 3억∼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비용일뿐이다.
여당과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서울 등 중부권에서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추가자금이 절대로 필요하다.
최근 지역구 출마를 권유받고 있는 재야 출신의 한 민주당 고위당직자는 『당선 가능성도 문제지만 솔직히 말해 막대한 선거비용을 마련할 엄두가 나지않아 망설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 서울출신 K의원은 13대 총선때부터 줄곧 중소기업체를 경영하는 3명의 고교·대학동창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왔으나 요즘 중소기업의 자금난 심화로 더이상 손을 벌리기가 어려워졌다며 난감히 하고있다.
또 서울에서 공천을 노리고 있는 당직자 K씨는 『현재 살고있는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바꿔 1억원 정도를 마련하고 친지들의 도움을 구하는 한편 나머지는 빚이라도 내볼생각』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후보자 개인만큼이나 중앙당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거처럼 1개 지역구당 3천만∼5천만원만 지급하려해도 1백억원 이상이 필요한데 야당의 입장에서 볼때 버거운 액수임에 틀림없다.
민주당은 궁여지책으로 전국구 공천 헌금의 양성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방법만이 자금력이 절대열세인 야당에 공평한 「게임의 룰」을 보장해 줄수 있다며 이번 선거법 개정협상의 최대관철 사항으로 꼽고 있다. 그르나 이를 쳐다보는 여론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상과 현실◁
13대 총선때 선관위는 선거구당 법정선거비용 한도를 평균 8천2백82만4천원(최고 해남·진도 1억6천4백만원),최소 동해시 5천5백만원)으로 공시했다. 이는 12대때의 7천56만4천원 보다 18% 인상한 것으로서 ▲소형인쇄물 제작 등 개인홍보비 ▲사무장 등 인건비 ▲후보개인경비 ▲자동차운영 등 교통비 ▲사무실 유지비 ▲사무연락비 등 말그대로 필요불가결한 최소한의 공식경비이다.
그러나 선거후 각 후보들이 법정한도내에서 씀씀이 내역을 적절히 꾸며 신고한것과 달리 후보당 평균비용이 3억∼4억원 안팎이었다는게 정설이다.
법정비용과 현실간의 괴리가 두차례의 지방선거에서 더욱 두드러졌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많지않다.
지난 3월 실시된 기초의회선거의 법정비용은 평균 1천5백99만5천원(최고 전남 보성군 벌교읍 3천4백61만원,최저 경북 점촌시 대성동 1천1백15만원). 하지만 선거후 후보자들 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만 모아도 실제비용은 억대가까이 추정됐고 당시 후보자가 1만5천명에 달한만큼 천문학적 숫자의 돈이 풀렸다고 봐야한다.
지난 6월 광역선거의 경우 법정비용은 평균 3천2백63만7천원(최고 전남 목포 5천7백67만원,최저 경북 울릉 1천7백73만원). 전국적으로 타락양상이 극도에 달했던 이 선거직후 알려진바로는 후보자당 평균 억대이상을 퍼부었고 심지어 『누구누구는 몇억 이상을 뿌렸다』는 얘기가 그럴싸한 근거자료와 함께 제시될정도였다.
물론 여야 또는 지역특성에 따라 비용이 큰 격차를 보이기도했으나 이때도 수천억 또는 1조를 웃도는 돈이 뿌려졌다는 분석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않았다. 어느새 당선을 위해서는 법정비용의 10배 이상 돈을 써야하는 풍토가 알게모르게 자리잡게 된것이다.
실제 인플레 등을 감안,14대 총선의 법정비용이 1억원 남짓한 선에서 책정될 것으로 보면 『현재의 선거풍토가 계속되는한 최소 10억원은 쥐어야 할 것』이란 얘기가 허풍으로만 들이지 않는다.
▷개선방안◁
여야는 선거비용에 관한 법조항이 사문화되는 정치현실이 정치권의 불신을 가중시킨다는 공동인식아래 선거법의 현실적 개정 및 실질적인 공영선거제 정착을 위한 방안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선거때마다 반복되는 매표행위 등 부정선거시비는 물론 당장 내년에 4차례나 예정된 「선거특수」가 국가경제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치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야는 ▲법정선거운동원 실비 ▲선거홍보·벽보비용의 국고부담,홍보인쇄물의 종류와 수량제한 등 비용측면의 지원과 함께 선거법 위반사건의 신속재판,선관위 및 사직당국의 감시활동강화 등 제도적 보완을 강구중이다. 또 방송·신문 등을 통한 유권자 접촉기회 확대,사전선거운동 기한의 명시 등 나름대로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현행법상 표를 사고 판 사람 모두를 처벌케돼 있는 쌍벌조항이 음성적인 매표행위를 부추겨왔다고 지적,금품수수자의 「자수감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선관위는 선거범의 처벌조항 강화와 함께 후보가 신고하는 지출내역의 진실성 확인을 위해 조사할 수 있는 강제권을 갖게해달라는 입장을 국회에서 제출한바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개선책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뒤따르고 공급이 있으면 없던 수요도 생겨나는것이 선거자금의 생리』라고 얘기다.
일부의원들은 또 『선거비용중 국고지원분을 늘린다해도 이는 후보부담을 국고부담으로 한다는 것 외에 총액은 변동이 없으며 오히려 그만큼 비용을 더쓰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법망이 아무리 치밀하고 행정당국의 감시가 엄정하다해도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의 선거풍토 쇄신의지가 관건이라는 반복되는 결론에 이른다고 해야할것 같다.<정광철·유성식기자>정광철·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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