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이춘 본지 북한부장의 북녘 3박4일(평양 91년 가을: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이춘 본지 북한부장의 북녘 3박4일(평양 91년 가을:상)

입력
1991.10.26 00:00
0 0

◎넘치는 구호/거리·건물마다 말의 천지 확인/비싼청자 “통일 노력하면 공짜”평양은 한치의 변화도 없는 주체사상의 요새였다.

작년 10월 평양에서 열렸던 2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수행취재했던 기자들의 방북기는 모두가 「설레는 마음은 서글픔을 안고 돌아왔다」로 시작되어 「평양은 먼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먼 곳이었다」로 끝을 맺고 있었다.

지난 22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던 4차 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서울을 떠나기전 지난해 취재기자들의 방북기를 다시 읽으면서 기자는 이들 방북기가 어느정도 과장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불과 3박4일뿐인 평양체류는 이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면서 오히려 작년보다 더 「과장된」 기사를 쓰기에 충분한 일정이었다.

회색빛 도시의 건물 건물마다 걸려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주체사상」을 강조하며 「로동당」을 찬양하는 플래카드는 더 이상 놀라움과 경이의 대상이 아니었다. 또 김일성주석만을 제외한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옷깃에 달고있는 「김일성 배지」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눈길 한번 주지않았다.

그런데도 이번 평양길은 북한에 대한 기자의 「확신」을 더욱 굳히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기자는 방북전 북한의 유엔가입과 소련사태 등으로 「변화하는 평양」을 기대했다.

변화하는 평양을 직접 보고 변화과정을 글로 쓰려는 의욕을 갖고 평양에 갔다. 그러나 기자의 기대는 의욕에 그치면서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평양에 대해 너무 무지하지 않았느냐는 자책을 금할 수 없는 심정이다.

각종 구호의 도시 평양은 이미 설정된 목적을 향해 끝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주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해에는 「통일」 「임수경」 「문익환」으로 이어졌다던 외침이 이번에는 「이인모」 「핵철수」의 항목이 늘어났을뿐 모양새는 똑같았다. 작년에도 지적됐던 「획일논리」가 재연되었고 북한주민들은 「당이 지시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북한주민들이 외치는 「통일」은 남북당국간에 논의되고 남쪽에서 거론되는 통일과는 색깔부터 다른 것이었다. 북한주민들은 통일을 외치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처럼 통일을 부르짖었다.

지난 23일 북한의 인민·공훈배우 등이 남측 대표들을 위해 마련한 공연서 기자는 취재에 매우 지쳐 공연도중 단잠에 빠져 있었다.

공훈배우 「리영욱」이 선창한 첫 프로인 「번영하라 조국이여」란 합창이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일관,「그래도 손님을 불러놓고 또 선전만 일삼는 구나」라고 생각하다 잠에 빠져 들었던 기자는 느닷없는 박수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마침 공훈배우 조혜경이 「통일아 통일아」를 부르자 대표단석 옆에 앉아있던 평양주민들이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장인 만경대 극장에 처음 들어섰을때 기자는 관객이 남측 대표단뿐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만큼 객석은 조용했다. 그러나 기자는 객석에 들어서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1천여석의 좌석을 평양시민들이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숨조차 죽이고 표정조차 없던 이많은 관객들이 통일노래가 시작되자 약속처럼 우렁찬 박수로 호응하니 깊은잠이 달아나지 않을수 없었다.

이 광경은 소년학생궁전에서 북한당국이 보여준 청소년들의 공연에서,북한정부가 남측 대표들을 위해 주최한 만찬장에서도 똑같이 연출되었다. 마지막 노래는 항상 「우리의 소원」이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신들린 것처럼 박수를 쳐댔다. 그들 북한주민들의 표정에서 「박수를 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실한 강박관념을 읽으면서 기자는 실소를 머금어야 했다.

통일을 외치는 평양시민들은 곳곳에 넘쳤다. 아니 넘쳤다기보다 조작된 소리였다. 어느정도 친분이 생긴 안내원들은 이 조작을 『1시간이면 충분한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평양에서 가장 큰 제1백화점에서도 「통일」은 여전했다. 백화점 5층 도자기류 코너에서 마주친 청자 1점의 가격이 자그만치 3천2백50원. 북한 봉급생활자의 한달월급이 평균 1백20원인점을 감안하면 30개월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놀라서 『이 청자를 사가느냐』고 물었더니 40대 여자판매원의 대답은 『북조선에서는 돈을 쓸곳이 없어 많이들 사가지고 간다』였다.

그러면서 『기자 선생은 집에 청자가 없느냐』고 물어왔다. 30개월치 봉급에 해당하는 물건이 서울의 집에 있을리가 만무해 『돈이 없어 살수가 없다』고 대답하자 즉각적으로 「통일을 위해 노력하면 그냥주겠다」고 제의해 왔다. 이와 농담조로 내쳐 『통일을 시키겠다』고 다짐하자 여자판매원은 그제서야 「통일」을 외면했다.

그러나 기자는 제1백화점에서 「통일」과 「임수경」 때문에 끝내 봉변을 당해야 했고 이같은 모양의 「봉변」은 평양 곳곳에서 연출돼 그후 남측 기자들은 「조직」된 주민들을 피해 취재보다 「도망」다니기에 바빴다.<계속>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