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그 고통 아직도 그대로/당시 애끊는 호소 본보실려… 국민들 슬픔함께/아들잃은 시각엔 매일 교회로/이민간 조부 미서도 전단돌려『내 손자 수한이는 6대 독자입니다. …누가 이 얼굴을 모르십니까. 아무것도 묻지 않을테니 우리 수한이를 돌려주세요』
지난 84년 5월17일자 한국일보 사회면에 실린 수한이 할아버지 김진하씨(63)의 애끊는 호소는 전국의 부모들을 울렸다.
손자를 찾으러 4차례나 전국을 돌며 수만리를 헤맨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집념이 알려지면서 모든 신문·방송이 수한이 찾기에 나섰고 거리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수한이 사진이 나붙었으나 수한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재 수한이는 세인의 기억속에서 까맣게 잊혀진 이름이 되었으나 가족들은 아직도 그 고통을 그대로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수한이 어머니 이명옥씨(38·서울 중랑구 묵1동 186의2)의 시간은 언제까지나 83년 11월28일에 멈춰 있다.
유난히 크고 맑은 눈을 가진 외아들 수한이가 짚앞 2백m 떨어진 놀이터에서 사라진 하오3시는 언제나 「현재」이다. 당시 수한이와 함께 놀이터를 뒹굴던 어린이들은 어엿한 중학생이 되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어머니 가슴속에 숨쉬는 아들은 그날 누나(13)의 운동화를 신겠다고 어리광부리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뾰루퉁해 나간 네살바기 그 모습 그대로이다.
어머니 이씨는 이제 전처럼 전화한통을 기대하며 초조해하지 않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헤매지 않는다. 2년전 중화동의 옛집을 떠난뒤로 전화번호도 바뀌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품안에서 많이 안정됐다고 스스로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오3시가 되면 어머니는 본능처럼 가슴이 떨려와 앉아있을수가 없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러 매일 이 시간이면 교회로 향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 어머니는 발끝만을 보며 걷는다. 담벼락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붙인 빛바랜 수한이 얼굴을 보게될까 싶어서이다. 아들 사진을 보게되면 또 가슴이 미어지고 속절없이 울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한이가 사라진뒤 집안은 폐허처럼 쓸쓸해졌다.
수한이를 찾느라 신경쓸틈이 없었던 남편 김기성씨(39·회사원)의 작은 사업체는 거액의 부도로 문을 닫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재작년 수한이와 살던 집을 팔고 지금의 전셋집으로 옮겼다.
손자를 그토록 사랑하던 시아버지 김진하씨와 시어머니는 아들부부의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89년 10월 딸이 있는 미 코네티컷으로 떠났다.
며느리 이씨는 편치않은 몸으로 전국을 헤매던 시아버지를 생각할때마다 또 목이 멘다. 며칠전 교회일로 경북 울진부근 외딴 시골에 갔다가 낯선주민들이 수한이 이름을 기억해내는 것을 보고 시아버지의 집념에 다시 놀란적이 있다.
미국생활에서 디스크도 도지고 2개월전에는 중풍까지 걸린 시아버지는 요즘도 그곳에서 습관처럼 수한이 전단을 뿌리고 다닌다고 했다.
이씨는 자식을 잃어버린 자신과 똑같은 부모들에게 충고한다. 『아이를 잃어버리면 2∼3개월만 찾다가 그 다음엔 단념하세요』
잊지 못하고 단념치 못한 가족의 고통이 어느만큼인지를 지금도 매일 겪고 있기 때문에 던지는 피맺힌 충고이다. 『시아버지가 내년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잊으려고 애쓰는 수한이 기억을 다시 되살리게 될까봐요』
그러나 이씨는 말과는 달리 수한이를 영원히 잊으려 하지 않는다. 현재의 전셋집도 굳이 옛집에서 10여분 남짓한 곳에 마련했다.
살아있는한 네살바기 어린 수한이는 끝내 엄마의 가슴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씨는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장병욱기자>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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