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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화의 날 맞은 이어령장관(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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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화의 날 맞은 이어령장관(초대석)

입력
1991.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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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문화의 생활화시대”/정치·경제위주 발상 대전환해야/많은 행사들은 「새바람」위한 정책/말과 책이 문화의 기본… 남북 말의 통일·도서관 육성에 최대역점문화부는 발족후 두번째 맞는 올해 문화의 달 상징표지를 「문화의 바람개비」로 정하고,30여종의 기념행사를 다채롭게 펼쳐나가고 있다. 문화의 바람개비로 바람을 일으켜 문화를 생활화하자는 문화주의 운동의 가장 열렬한 주창자는 이어령 문화부장관인데,그는 샘솟듯하는 문화적 상상력을 바람개비를 돌리며 종횡무진 숨차게 달려왔다. 취임후 20개월동안 『상상력을 가지라』고 문화부관리들을 채근하면서 무려 1백여종의 크고 작은 문화사업과 행사를 주도하여 「이벤트(행사)장관」 「문화전도사」 등 긍정·부정이 섞인 별명들을 얻고 있는 이어령장관을 문화의 날(20일)을 맞아 만나본다.

▼지난 2년동안 문화부 행사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과연 무엇이 문화부의 정책방향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화부 활동이 지나치게 행사위주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많은 행사를 벌여온 것 자체가 하나의 정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지않은 예산으로 빠른 시간안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자꾸 벌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고,그 전략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만 벌인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반짝이는 수많은 나뭇잎만 보지말고 뿌리를 봐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열가지 백가지 사업을 두서없이 벌이는 것 같지만,그것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고,뿌리는 하나였습니다. 그 모든 행사들은 우리가 얼마나 극심한 문화의 결핍속에 살고 있나를 일깨우고,결핍의 치료방안을 제시하고,곳곳에서 문화바람을 일으켜 문화의 생활화를 이루자는 목표아래 진행된 것입니다.

문화의식이란 문화위기 의식과 떼낼 수 없는 것입니다. 문화의 결핍을 깨닫는 곳에서 문화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문화부의 2년은 문화결핍의 병을 알려주고 약을 주는 2년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많은 사업들 중에서 문화부의 뜻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업은 어떤 것입니까.

『「쌈지마당」과 「찾아가는 문화프로그램」을 들고 싶습니다. 쌈지마당은 대도시의 달동네 등 문화소외지역의 버려진 빈터를 찾아내어 소규모 공연·전시·마을잔치를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문화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사업인데,지금까지 서울시의 협조로 중계동·금호동·창신동에 1∼3백여평 규모의 쌈지마당을 만들었습니다. 생활이 각박한 사람들일수록 마음에 문화가 깃들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달동네에서 어렵게 자라는 어린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때 쌈지미당에서 듣던 창 한자락이나 풍경소리를 문득 되살리며 문화의 향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것이 쌈지마당의 꿈입니다.

○「쌈지마당」등 보람

「찾아가는 문화프로그램」 역시 문화소외지역 사람들의 문화향수권을 높여주고자 하는 사업입니다. 우리는 대형버스에 책·그림·문화재·공연도구들을 싣고 벽지 학교·근로청소년 교육장·병원·기업 사옥·지방문화원·해수욕장·교도소 등을 찾아다니며 문화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국립박물관·현대미술관·국악원·국립극장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금년 3월29월 사이에 전국 곳곳에서 56회의 전시회와 공연을 가졌습니다.

위중해 보이는 환자가 훨체어를 타고 병원 복도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는 부드러운 모습을 보았을때,쌈지마당에 어려운 이웃들이 몰려나와 국악공연을 즐기고 있을때,문화부장관으로서 큰 보람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정관이 된후 괴로움도 많고 후회도 많이 했으나 이 두가지 사업을 하면서 장관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관께서는 취임초에 「길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 집을 지으러가는 목수의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것 이외에 집은 얼마나 지으셨습니까.

『아직 지붕을 얹지는 못했으나 네기둥은 튼튼하게 세웠다고 자부합니다. 문화부 발족이후 국어연구원과 도서관업무가 문화부로 이관됐고,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한 토대를 닦아왔으며,예술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네가지야말로 민족문화의 네기둥이 아니겠습니까.

문화의 기본은 말과 책입니다. 국어연구원과 도서관은 앞으로 문화부 업무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국토를 뺏긴 적은 있으나 말을 뺏기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에는 흐린날 맑은날이 있지만 국어정책이란 변화없는 지열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반세기에 이르는 남북분단은 우리말을 분열시켰습니다. 국토를 통일하는 일 못지않게 남·북의 말을 통일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며,내년에 이 작업을 위해 예산을 확보해놓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단지 책과 자료를 찾아보는 곳이 아니라 지역문화의 센터가 될 수 있도록 여러기능을 함께 육성해가려고 합니다. 온 국민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도서관의 회원이 되어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문화발전 토대닦아

예술학교는 근거법규가 통과되고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93년부터 학생을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 대학의 예체능계 입시부정이 잇달아 터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예능교육을 일반 대학으로부터 분리하면 입시부정문제도 해결돼리라고 보십니까.

『예술학교를 따로 세우려는 것은 예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일반학교에서 재능을 허비하지 않도록 효율적인 교육을 시키기위한 것입니다. 신은 수수께끼를 좋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은총을 숨겨두곤 하는데,중동에 내린 은총은 사막에 묻혀있는 석유이듯이 우리민족에 내린 은총은 바로 예술적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은 다치기쉽고,불균형하고,일반적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들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회만이 천재를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이론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일반대학으로 가고 실기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예술학교에 들어가 조기교육,특수교육을 받게해야 합니다. 예능교육이 지금처럼 부유층 자녀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국비장학생 제도를 확충하여 어린 천재들을 널리 발굴해야 합니다.

예술가에겐 학위가 아니라 특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예술학교가 설립되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각 대학의 예체능계가 이론교육 중심으로 재편되고,결국은 입시부정 문제의 해결에도 크게 기여하리하고 생각합니다』

○예산확보 가장 힘들어

▼정부예산의 0.4%에 불과한 문화부 예산의 영세성이 항상 지적되곤 합니다. 문화부 예산이 이처럼 낮은 것은 우리 정부의 문화지수가 그만큼 낮기 때문이 아닙니까.

『내년에는 문예진흥원 예산까지 합쳐 1천5백억정도를 확보,전체예산의 0.5% 수준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문화부 장관이된후 가장 힘든일이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었는데,이것은 우리정부가 특별히 비문화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다른 시급한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방차,위급차 다 비켜주고나면 사이렌이 없는 문화부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사업들은 항상 「불요불급」 「과소비」의 딱지가 불기 쉽습니다. 정부뿐 아니라 국민의 문화지수가 높아져야 하는데,이렇게 되려면 먼저 국민들이 문화가 없이는 질식할 것 같다는 숨막힘을 느껴야 합니다. 조악한 문화,엉터리문화 앞에서 온국민이 메스꺼워 하는 것이 문화의식입니다. 천박한 속물근성 앞에 구토를 느끼는 문화가 나와야 과소비와 낭비도 추방할 수 있습니다.

20세기를 산업주의시대라고 부른다면 앞으로 오는 21세기는 문화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주의 시대의 도래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한세기동안 역사의 지각생으로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문화주의시대의 새로운 물결을 타지않으면 우리의 아들과 손자의 세대가 불행을 겪게됩니다. 문화가 정치·경제를 위해 있는게 아니라 정치 경제가 그 나라의 문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발상의 대전환으로 문화주의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문화신문 창간을 권하셨다는데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기업이 국민의 기업이 되려면 문화없이는 안된다는 말을 정 회장에게 한 적이 있고,또 문화부가 돈이 없어 할 수 없는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문화사업들을 현대가 문화신문을 만들어 펼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정 회장은 전적으로 문화주의 시대의 도래에 동감하셨습니다. 재벌의 언론참여라는 점에서 논란이 있으나 현대문화일보는 다른 신문들과 다른 문화신문으로서 문화사회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 정 회장의 뜻인줄 알고 있습니다』

▼장관께서는 특히 올림픽문화행사 이래 샘솟듯하는 문화적 아이디어로 유명한데,그 원천은 무엇입니까.

○어릴때 체험이 중요

『나의 문화적 상상력이나 아이디어는 대부분 10살 이전의 문화체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에겐 음악,문학,운동을 좋아하는 세 형님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형님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형님들의 책과 레코드를 닥치는대로 읽고 들었던것이 지금까지 나의 문화적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올림픽때의 굴렁쇠,올 문화의 달의 바람개비,그리고 대전엑스포에서 건립할 빈병으로 만드는 재생관 등은 모두 나의 어릴적 체험에서 나온것입니다. 나는 언어나 글을 곤충채집으로 자주 비유하는데 말과 글을 골라서 쓰는 것은 곤충 채로 곤충을 잡는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의책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때」도 6살 이전의 체험들을 뿌리로 삼고 있습니다. 나는 세살때의 문화체험이 평생을 간다고 생각하며,그런점에서 어린이를 위한 문화교육에 관심이 높습니다. 교과서중에서 국어책을 가장 두껍게 만들어 어린시절부터 우리말과 글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시키자는 것,국민학교에서 부터 국악교육을 시키자는 것 등은 모두 이런뜻에서 우리가 교육부에 건의했던 것입니다』

▼문화부 창설 2년이 가까워오는데 이제 어떤 방향전환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20개월은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듯이 급하게 달려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화부는 과도기를 지나 2기로 접어들면서 차근차근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입니다. 미완성의 청사진이었으나 지난 2년동안 바람을 일으켰고 바람개비를 만들었으나 초장기의 임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람개비를 들고 뛰면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문화는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일단 바람이 일면 강도와 방향과 빛깔을 느낄 수 있고,그 힘을 모아 엄청난 동력으로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약력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단국대서 문학박사학위 받음(87년)

▲67∼89년 이대 교수

▲72∼86년 「문학사상」 주간

▲「흙속에 저바람속에」(63년) 「한국과 한국인」(68년) 「문 장백과대사전」(71년) 「한의 문화론」(78년 일본서 발간) 「축소지향의 일본인」(81년 일본서 발간) 등 40여권의 편· 저서가 있음.<대담 장명수 편집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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