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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찾아내고 행방불명 막자”(「인간증발」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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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찾아내고 행방불명 막자”(「인간증발」 막자)

입력
1991.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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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시민단체 발벗고 나섰다/정 총리 “예방·수사 총력을”/관계부처별로 대책마련에 착수/YWCA등 여성단체 참여확대실종자들을 찾아내고 인간증발을 예방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이 시작됐다. 납치,인신매매 등으로 인한 인간증발이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대두됨에 따라 정부는 사건수사·예방을 위해 관계부처별로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으며 이미 자발적 시민운동을 펼쳐온 사회단체들의 참여폭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회장 김수학·64)는 방대한 산하조직을 총동원,3백만 회원이 실종자찾기·인간증발막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정원식 국무총리는 19일 『최근 여학생들의 실종·곡예어린이 학대·양녀폭행 등 반인륜적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대구 다섯어린이의 행방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크게 우려할만한 일』이라고 지적,내무 법무 교육 보사부 등 관계장관들에게 사건예방 및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정 총리는 이날 『이런 사회병리 현상이 번져가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로 정부로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대처해야 할것』이라며 국민들에게도 활발한 제보와 실종자찾기 캠페인에 적극 나서줄 것 등을 당부했다.

이에따라 정부 각 부처는 특별대책 수립에 착수했는데 지난 9월부터 1만5천여 집배원을 통해 대구 5소년찾기 운동을 시작했던 체신부는 이 운동의 대상을 신고된 전체실종자로 확대키로 했다.

서울시 교육청도 지난해 3월15일 실종된 동광여상 이미영양(한국일보 10월17일자 23면 보도) 등 실종학생들을 찾기위해 해당학교를 통해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9개 산하교육청 및 1천1백여 초중고교의 교직원·학생들이 실종학생들을 찾는 캠페인 및 홍보에 나서도록 했다.

지난 7월5일부터 대구 5소년찾기 운동을 벌여온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는 이날 중앙협의회와 15개 시·도지부에 각각 전담부서를 설치,1차로 한국일보에 게재된 실종자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실종경위 등을 수록한 전단 20만장과 책받침 10만개를 만들어 전국 2백70개 시·군·구지회에 배포키로 했다.

협의회는 또 실종자의 사진 등이 실린 수첩을 제작,모든 회원이 가지고 다니면서 볼수 있게 하고 매주 3박4일 일정으로 실시되는 새마을지도자 연수교육을 통해 조직적인 실종자찾기 방안을 교육키로 했다.

협의회는 직장새마을협의회 학교새마을협의회 마을문고 새마을금고 주민모임 등도 최대한 활용,인간증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한국어린이재단부설 어린이 찾아주기 종합센터와 협력,참여규모를 확대해갈 계획이다.

또 피해당사자인 실종자 가족협의회(회장 최낙 ·56)는 민주시민운동연합(의장 전재혁·48)과 손잡고 시민자위봉사단(단장 김경용·47)을 통한 구출작전과 신고접수활동(720­0487,722­0188)을 강화하고 있다.

대한 YWCA연합회(회장 김갑현·59)는 89년 4월 인간증발의 주범인 인신매매 추방운동을 시작,서울 YWCA(회장 박정희·52)에 인신매매신고 전화(778­5858)를 개설하고 신고사례의 처리결과에 대한 감시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지역 한국여성단체연합(738­2883) 여성의 전화(334­4344) 등이 인간증발의 주된 피해자인 여성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중3 박정숙양 등교길 잠적 14개월/긴머리 뒷모습만 보면 “혹시나…”/학교서 “결석” 전화받곤 “설마…”/주위사람엔 “시골 요양” 숨겨/“금방이라도 뛰어올듯” 어머니 현관보며 넋잃어

박정숙양(16·서울 S중 3)은 지난해 8월25일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선뒤 실종됐다.

아침7시40분께 여느때와 같이 청바지에 흰색티셔츠를 입혀 정숙이를 등교시키고 잇따라 대학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아들,남편을 모두 내보낸뒤 한숨돌리고 있던 상오9시10분께 어머니 김옥순씨(43)는 뜻밖의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담임선생님은 『정숙이가 학교에 안왔는데 어디 아픈가요』라고 물었다.

김씨는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충격을 받았으나 실종이나 납치됐을 가능성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분명 교통사고일 것이라고 단정한 김씨는 인근 병원부터 시내 거의 전응급실을 수소문하고 집(서울 강서구 화곡동 423의35 성지연립 3동302호)에서 학교까지의 1㎞ 가량 등교길을 모두 되짚어 찾았으나 어디서도 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비로소 당시 신문지면에 자주 등장하던 「인신매매」에 생각이 미쳤으나 밤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딸의 실종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집에 밤샘 공부하러 보냈다』고 둘러댄 김씨는 다음날까지도 소식이 없자 결국 가족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집안은 이때부터 풍비박산이 됐다.

아이들에게 유난히 자상했던 아버지는 말을 잃은채 술로 괴로움을 달랬고 어머니와 두오빠는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다.

여느 부모처럼 이들도 유흥가를 뒤지고 전단을 뿌리며 필사적으로 딸을 찾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음은 말할것도 없다. 냉대와 무관심의 벽앞에서 수없이 절망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점이 있다면 딸의 실종을 널리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숙이가 없어진 것을 아는 사람은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척 몇,중학교 담임과 교장선생님 뿐이다.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신념과도 같은 믿음 때문이다.

평소 성격이 밝고 사람을 잘 사귀었던 정숙이는 그만큼 아는 사람이 많다. 언젠가 정숙이가 돌아오면 따가운 눈총을 받지않고 그야말로 「아무일 없었던듯」 주위의 따스한 사랑을 받으며 살수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숙이는 현재 교통사고를 당해 시골에서 요양중인 것으로 되어있다. 학교에서는 지난해 11월 가족의 요청으로 자퇴처리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해서든 졸업장을 받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어머니 김씨는 정숙이 친구들이 전화를 할때마다 1년이 넘도록 친구를 찾는 아이들의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으면서도 가슴이 미어진다. 이미 어엿한 여고생이 된 친구들은 『저희들이 직접 요양지에 내려가 정숙이를 다낫게해 데리고 올께요』라며 만나게 해 달라고 조른다.

이같은 이유로 가족들은 주소와 어머니 이름외엔 다른것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정숙이 가족들은 실종이후 버스를 탈때 기를 쓰고 운전석옆 맨앞자리를 찾아앉는 공통된 습관이 생겼다.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앉아야 혹시라도 정숙이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긴머리에 비슷한 뒷모습의 여학생을 보고 다음정거장서 내려 거슬러 뜀박질을 하는 일은 아예 일상생활이 돼 버렸다.

동생을 찾기위해 지난해 12월 입대를 연기했던 큰오빠도 오는 29일이면 군에 가야한다. 어머니 김씨는 집에 있을때면 늘 현관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 꾸며댄 거짓말이 실제 현실로 되어 문득 정숙이가 환하게 웃으며 『엄마,이제 몸이 다나아서 올라왔어요』 하며 들어와 품안에 뛰어들 것같은 환상때문이다.<정희경기자>

◎새마을운동 중앙협도/산하 3백만 회원 동원/김수학회장 “전담부서 설치”

『인간성과 연대감의 상실은 우리사회를 도덕적 위기에 빠지게 했고 급기야 인간증발이라는 극악한 사회병리현상을 낳았다. 딸자식 가진 사람치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됐지만 남의 자식일에는 무관심하다』

새마을조직을 통한 실종자찾기·인간증발막기 운동을 선언한 김수학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장(64)은 인간증발이 인간성 증발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한다.

협의회는 이미 대구 성서국교 다섯소년의 실종 1백일째인 지난 7월5일부터 대구직할시 지부를 중심으로 전단 2백만장 부채 60만개를 만들어 돌렸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놀라울만큼 냉담했다. 그래서 새마을 전조직을 동원하고 유관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전국적 사람찾기 운동을 전개키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의 집무실 벽에는 다섯어린이찾기 전단과 함께 한국일보의 「인간증발막자」는 시리즈 기사가 날짜별로 붙어있다. 누구나 볼 수 있게 붙여두고 집무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성가실만큼 일일이 내용을 설명해준다. 국교 6년,4년짜리 손녀를 둔 김 회장 자신도 며느리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애들 조심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흔을 바라보는 시골노모가 60이 다된 며느리에게 전화할 때마다 『밖에 나갈 때는 언제나 몸조심해라』 하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럴 정도가 됐으니 우리사회가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다.

김 회장은 협의회의 실종자찾기운동이 개인의 아픔을 나누고 덜어주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식을 회복하는 범사회운동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자식 남의 자식 구별없이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서야만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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