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10월4일부터 16일까지 상당히 긴 중국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과연 김일성과 중국지도자들은 무슨 말을 주고 받았을까? 김일성은 무엇을 얻고자 했고 무엇을 얻고 돌아갔을까?필자는 공교롭게도 김일성과 같은 시기에 중국을 방문했을때 정부·학계 등 비교적 여러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과 중국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필자가 만나본 몇몇사람들은 이런 저런 가능성을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그것은 서방언론의 보도와 마찬가지로 추측에 불과했으며 확인된 정보는 아니었다. 가령 중국이 북한에 경제원조를 얼마 약속했다든가 또는 한국과 앞으로 언제까지는 수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추측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한중 수교문제에 대해 중국지도층이 김일성에게 어떤 약속을 했건 그것이 앞으로의 한중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중간의 공식외교관계 수립은 실질적인 한중관계의 결과이며 그 원인은 아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한중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하는 문제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지도자들이 김일성에게 무엇을 약속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과연 중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개방과 개혁」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어느 단계까지 그리고 어떤 속도로 진행될 것인가하는 문제가 더욱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국은 지금 중국적인 사회주의를 발전시킨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이전에는 특별히 「중국적」인 사회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은 공산주의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동남아 등의 다른 지역에서 공산혁명운동을 지원한 일도 있다. 최근에 중국이 중국적인 사회주의를 내세우게된 이유는 중국의 체제가 동유럽이나 소련공산주의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최근에 기본정책 방향을 바꾼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등소평의 지도하에 추구해온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개혁과 개방」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해 나갈것을 다짐하고 있다.
물론 최근 몇년동안은 인플레억지를 위한 긴축정책과 90년 6월 사태로 인한 정치적 견제조치 등으로 「개혁과 개방」 정책이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기도 했으나,필자의 인상으로는 오히려 중국지도층은 사회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개혁과 개방」을 계속 추진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것 같다.
문제는 개혁을 의식적으로 포기할 것인가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내재적 논리를 어느 단계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데 있다고 본다.
최근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국영기업체중에 중대기업의 비능률을 극복하기 위해 비공산당인사들의 견해를 청취하는 모임을 가졌다.
중국지도층이 국영기업체의 비능률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지금까지의 가격통제를 풀고 가격을 시장메케니즘에 맡길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은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니까 중국지도층은 경제발전을 달성하겠다는 공통된 결의와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주의경제의 틀을 벗어나야만하는 새로운 문제에 부닥치게 되기때문에 아직 문제해결에 대한 공통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중국의 이와같은 고민은 사실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마 19세기중엽에 서양세력들과 만나는 순간부터 중국은 「자강」하기 위해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개혁은 「중체서용」,즉 체제의 본질은 중국적인 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실용적인 방법과 기술만을 서양에서 배우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중국의 고민은 과연 중국적인 체제라는 것을 유지하면서 방법과 기술만을 개혁할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가령 가격정책은 방법인 동시에 체제,즉 정부의 기능과 권력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문제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의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방법론적인 차원을 넘어 근본적으로 앞으로 중국사회가 어떤 종류의 사회로 될것인가 하는 정치철학적인 문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의 지도층은 이러한 정치철학적 문제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개혁정책은 한계에 부닥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민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다 잘살고 싶다」는 소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잘 살수만 있다면 정치노선에 대한 논쟁은 관심밖의 일이다. 중국인민들,특히 젊은세대와 지식층은 경제발전과 인간의 자유를 저해하는 어떤 체제나 이념에 대해서도 그것을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좀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중국의 장래는 이미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앞으로 중국사회가 결국은 보다 자유로운 경제와 정치를 향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물론 중국이 걸어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권력의 계승,군의 향방,서방측과의 관계 등 참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역사는 궁극적으로 인민들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중국인민의 마음속에 우정과 동감을 깊이 새겨놓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의 공식수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인민의 진정한 우의를 얻는 일이다. 공식외교관계가 있으면서도 서로 불신하고 대립하는 나라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국민들 사이에 진정한 우의가 있는 곳에는 공식수교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이런 뜻에서 김일성은 방중을 통해 별로 얻은 것 없이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것은 중국인민들의 태도에서 읽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사회과학원 원장·전 주미대사>사회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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