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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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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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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교통부장관께언젠가 들은 말 같습니다만,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엊그제 장관이 밝힌 「제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통소통대책」,2인 이하 탑승차량의 고속도로 운행금지 방안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때 머리에 떠올린 「올 것」의 모양은 H·헬먼이란 사람이 쓴 『미래의 교통』(68년)에서 읽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마지막 트럭마저 힘이 다해 북동회랑에 주저앉고 말았다.

모든 도로가 마비됐다. 생필품은 바닥이 나고 있다.

도로를 소통시키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수백만대의 승용차와 트럭이 오도 가도 못한다.

대통령은 오늘 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예정이다』

여기 나타난 북동회랑이란 워싱턴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을 잇는 미국 동부의 심장부가 아닙니까. 이 일대의 교통이 막히면,국가적인 위기가 닥칠 것은 당연합니다.

68년에 나온 「헬먼은 경고」는 아직까지 현실화한 적이 없지만,그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고 미국 사람들은 그 경고를 귀담아 듣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이 소홀했던 교통투자를 만회하기 위해,부시 행정부는 1천45억달러의 긴급예산을 의회에 요청했고,상원은 지난 5월 이를 1천2백30억달러로 증액,하원교통위는 17일 이를 다시 1천5백10억달러로 증액키로,거의 만장일치(52대 3)로 가결했다는 소식(AP)이 이를 말해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헬먼의 경고」는 결코 공상속의 과장일수만은 없습니다.

교통부가 제시한 경인·경수고속도로 소통 대책은 그와 같은 위기의 빨간 경고등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 신문의 사설역시 그렇게 받아들이는듯 합니다. 그 「극약처방」에 따른 불편이야 대단히 크겠지만,국민들이 가능한데까지는 순응하리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극약」이라도 미봉책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입니다. 더 걱정스럽기는 미봉책인 줄 알면서 이에 순응해 준 국민들의 충정이,오히려 정부로 하여금 미봉책위에 안주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온 정책행태가 그런 걱정마저 하게 합니다.

그런 예를 굳이 들자면,걸프전 때의 자가용차 10부제 운행이 있습니다. 이 조치는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 좋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문제는 그 뒤끝입니다. 정부가 10부제를 계속하자고 한 것입니다. 10부제를 계속한다고 해도,자동차 증가추세에 비추어,그 효과가 몇달 못갈 것은 누구가 보아도 뻔했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정부 교통정책의 한 표본이나 다름 없습니다. 임시방편의 미봉책이나 내놓고,정책부재의 아픔을 국민에게 떠넘기며,그러다 보면 국민들이 그 아픔을 더는 못견디겠노라고 할 때가 있을 것임을 모르는듯 한 것입니다.

정책이란 무슨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일의 우선순위를 가려서,거기 알맞는 자원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선택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통부장관이 보기에,그 사이 우리 정부의 투자정책의 우선순위 결정이 올바랐고,가용자원을 제대로 배분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적어도 지금 교통사정으로 보아서는 꼭 그랬다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교통대책 면에서 정부투자가 왜곡됐다고 할만한 구석을 여럿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공약사업이니 뭐니하는 데로,가용자원이 흩어지고,도로사업 자체도 완급을 얼마나 엄밀하게 따졌는지 의심스런 경우가 눈에 띕니다.

장관이 주관해 추진중인 고속전철사업 역시 그런 흠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투자의 필요성과 효율성에 더하여,그 투자를 한 두해 미뤄서 자원을 전용할 수는 없는지를 생각할만한 것입니다. 위로부터의 기정방침이라고 그냥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교통의 근본대책은 모든 투자계획을 재평가하고 가용자원을 집중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또 한편 아쉬운 것은 바로 착상을 하고도 제대로 실현을 못한 정책들입니다. 그중 하나가 지난 연초 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교통계획법입니다. 여러 갈래 교통대책을 통합·조정해서 5∼20년의 중장기계획을 만들어 집행할 수 있게 한다는 그 구상은,제대로 한번 시도해 봄직도 한 것이었으나,부처간의 합의를 못얻어 유야무야가 된 꼴입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모셨던 교통대책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2부처장관을 모아 사공이 많다 싶었던 그 위원회는,지금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지금까지 정부가 범정부적인 교통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단적인 예증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하고 있는 교통난의 원인이 여기 있음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부장관이 할일은 정부안에 먼저 빨간 경고등을 밝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범정부적 전열을 가다듬도록 일깨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웬만한 관리능력을 넘어선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장관 한 사람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극약처방」이 불가피한 교통사정을 그냥둘 수는 없습니다. 교통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합니다. 이 뜻을 장관은 대통령에게 「직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교통부장관이 대통령을 바로 보좌하는 길이 됩니다. 그럴 경우 여론이 장관편에 있을 것임을,나는 장담할 수가 있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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