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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웃음 이젠 어디에…(「인간증발」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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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웃음 이젠 어디에…(「인간증발」막자)

입력
1991.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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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3년 한금희양 16개월째 “감감”/학교서 급우와 다툰뒤 사라져/술집·환락가등에 전단 수없이/심장판막증 아버지 “딸 찾아야 수술” 불편한 몸 버텨실종된 한금희양(16)의 아버지 한기호씨(44·회사원·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양아파트6동 1203호)는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으나 수술을 하지않고 있다.

『의사는 위험성이 크지않다고 하지만 모든 수술이란 것이 완벽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전에는 절대로 「어찌될지도 모르는」 수술을 받지않을 작정입니다』

한씨는 딸을 찾을때까지는 불편한 몸을 어떻게 든 버티며 기다리기로 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인 이정숙씨(43)도 최근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채 집에 누워있다. 1주일전 딸의 행방을 수소문하러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서울시립 부녀자 기술원에 갔다가 길에서 넘어져 무릎골절상을 입었다.

고덕중 3학년이던 금희는 지난해 6월8일 학교에 사라졌다.

점심시간에 탈의실서 급우 3∼4명과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한뒤 쭈그리고 앉아 울던 모습이 주위에서본 금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오 수업을 알리는 벨소리에 함께 있던 급우들은 모두 교실로 돌아갔으나 수업이 끝날때까지 금희의 자리에는 책가방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날저녁 학교로부터 전화연락을 받은 부모는 담임선생님과 급우 모두와 함께 학교안팎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밤늦게라도 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로 일단 집에 돌아갔으나 자정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인근 공원과 야산을 밤새도록 뒤졌다. 부모들은 금희의 평소 성격이나 집안환경,지금까지 정황으로 보아 스스로 가출했을 가능성은 단 1%도 없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유복한 환경에 성격도 밝고 건강했으며 부모의 간섭없이 제스스로 할일을 챙겨 성적도 뛰어난편이었다.

부모 언니 남동생의 생일,결혼기념일까지 꼬박꼬박 챙겨 선물을 마련할만큼 섬세하고 정이 깊었다.

부모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않지만 그날 금희가 속이상해 우산도 쓰지않고 교문 밖을 나와 걷다가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화한통 없는것을 보면 어딘가 부자유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얀 피부에 귀티나 보이는 얼굴,나이보다 훨씬 숙성해 보이는 키 1m64㎝의 체격 등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한씨 부부는 지금까지 서울시내 유흥업소와 심지어 사창가까지 안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헤매고 다녔고 허위제보를 받아 지방도 수차례 다녀왔다.

웃음이 떠나지 않던 행복한 집안분위기는 금희가 실종된뒤 동굴속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금희와 한방을 쓰던 큰딸 선희양(18·고 3)은 우수했던 성적이 점점 처지고 있고 막내 경현(12·국교 6)이의 일기장은 1년4개월 내내 누나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만 씌어지고 있다.

어머니 이씨는 전화벨이 울리거나 문소리가 날 때마다 덜컥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딸이 쓰던 책상,가방,옷들을 쏜끝하나 대지않은채 그대로 두고 있다. 언젠가 금희가 돌아오면 「아무일 없었던듯」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하기위해서이다.

이씨는 『딸을 찾아다니면서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이 너무나 많은데 놀랐다』며 『도대체 우리사회 「어른」들은 다 무엇하는 사람들이냐』고 울부짖었다.<김광덕기자>

◎“「실종 여성」 바로 우리곁에 있다”/실종자가족협서 감사패 받은 김근영순경/“사회 무관심이 이들을 지나쳐/유허직업소개소서 인신매매 태연히/각종 법규도 허술… 전담반 생겼으면”

잃어버린 자녀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종자 가족협의회(회장 최낙균·56)는 17일 하오2시 서울역 광장에서 「실종자찾기 시민결의대회」를 열고 무관심한 정부,시민들의 동참과 악덕업주들의 반성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민주시민운동연합(민시련) 회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대회는 감사패 전달,호소문·편지낭독,구호제창 순으로 간략하게 끝났지만 대회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인간 증발이 심각한 사회적문제임을 인식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실종자 부모인 김성길씨(41·여)의 「정부에 보내는 호소문」,김덕남씨(38)의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낭독에 이어 지난해 10월 딸 홍민혜양(17·영란여상 2)을 잃은 김영자씨(43·여)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울먹이며 잃을 때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참석자들은 「내딸 인생 짓밟은 인간갑초 뿌리뽑자」,「선량한 힘 뭉쳐 향락문화 바로잡자」 등의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이날 대회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감사패를 받은 서울 경찰청 특수강력수사대 김근영순경(29)도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눈시울을 붉히며 『실종자를 찾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시련과 함께 실종자 찾기에 나서 30여명의 젊은여성을 유흥업소에서 구출해 낸 김 순경은 『지금도 많은 젊은여성들이 감금상태에서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받고 있으나 사회적 관심이 부족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버젓이 허가받은 직업소개소에서 인신매매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손을 댈수없고 심증이 가는 유흥업소도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 순경은 의료기관이 본인임을 확인하고 과정없이 유흥업주의 말만으로 보건증을 남발,실종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점을 예로들며 실종자를 찾기 위한 관심과 법규가 허술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순경이 협의회와 함께 실종자 찾기에 함께 나선 것은 지난 1월 중순께. 강력사건만 처리하기 때문에 광역활동이 가능한 특수강력수사대에 민시련이 협조를 요청해왔다.

김순경은 이달초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D룸살롱에서 고모양(18) 등 8명을 구해내 귀가 시키는 등 지금까지 20여차례에 30여명을 구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이들은 좀더 돈을 벌기위해 또는 가정불화 등으로 무작정 집을 나와 수렁에 빠졌던 여성들이다. 이들중에는 전문대와 대학 재학생들도 끼여있는데 건장한 젊은 청년들에게 강제로 끌려오거나 악덕직업소개소의 달콤한 꾐에 속아 유흥업소 등에 접객부로 전락했다.

일단 유흥업소에 팔려가면 사회와는 단절된채 철저하게 감시당한다. D룸살롱의 경우 목욕탕에까지 감시자가 따라붙어 옷을 몽땅 빼앗아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이곳에 잡혀 있었던 강모양(20)은 목욕탕에 가기전에 미리 옷을 두벌 입고 하나를 목욕탕 화장실에 벗어놓고 나머지 옷을 감시자에게 주어 안심시킨 뒤 숨겨둔 옷을 입고 화장실 창문을 부수며 6m 아래로 뛰어내려 다른 여성들까지 구하게 했다.

김 순경은 『실종자 찾기에 참여하다보니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몸으로 느끼게 됐다』며 『실종자 찾기 전담반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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