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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소녀의 비극(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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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소녀의 비극(사설)

입력
199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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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의 소녀­. 반세기이전인 구시대의 통속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처참한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 실재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시계바늘은 낮을 가리키고 있는가 밤을 가리키고 있는가. 충격보다 더한 수치감이 엄습한다.갈데 없는 고아를 자신의 호적에 버젓이 입적시켜 소녀곡예사로 혹독하게 부려먹은 간계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사육사」 부부는 서커스가 사양길에 들자 유흥업소에 출연케하여 철저하게 학대하고 착취하였다. 그동안 앙상한 어린이는 사람이 아닌 동물 취급을 당해 이상 발육의 기형아가 되어 버렸다. 문명사회의 뒤안길에 이런 암흑세계가 있었다니 그 가증함에 어찌 고개를 들겠는가.

어린이에 대한 학대행위는 날로 험악해 가고 있다. 속칭 앵벌이 조직은 장애 어린이에게 까지 악의 손을 뻗친다. 도심의 큰 거리를 벗어나 지하도나 지하철역 주변서 구걸과 물건팔이 어린이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그들이 범죄조직의 끄나풀이 아니라고 어느 누구도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하다.

우리의 어린이 보호는 지극히 형식적이다.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한다」는 어린이 헌장은 어린이 날에만 창고에서 꺼내 먼지를 터는 정도에서 그친다. 헌장엔 다음의 조항도 담겼다.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되고,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실천력없이 사문화한 이런 문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동복지법도 마찬가지다.

서커스 소녀가 무법과 비정의 천지에서 탈출한 것도 스스로 발버둥친 자구의 노력 때문이었다. 유흥업소에서 밤마다 벌이는 슬픈 인간곡예를 보고 즐긴 관객이나 양의 탈을 쓴 늑대같은 양부모에 속아 넘어간 수사기관은 형식과 무관심의 책임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새싹은 내일의 주인이다. 건전한 가정과 사회가 그들을 올바로 지켜주고 키워줄 의무가 있다. 내 자녀가 귀하면 버림받은 어린이의 존엄도 귀하게 여김이 문명인의 당연한 도리이다. 새싹을 짓밟고 가꾸지 못하면서 밝은 미래를 기대함은 어리석다. 비록 비정과 무정이 판치는 세상이라 하여도 어린이를 박대하고 관심밖으로 내모는 몰지각은 반문명이며 반인간의 행위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인면수심 같은 어른이 있는 한 어린이를 향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이 보호는 헌장이나 법률의 형식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지켜주고 모두가 감시하는 뜨거운 피와 양심이 요구된다.

서커스 소녀의 충격을 일과성의 비극으로 보아서는 안될줄 안다. 놀란만큼 우리네 각성이 필요하다. 생명의 존엄을 공동으로 지켜가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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