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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제머리 깎기/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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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제머리 깎기/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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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맨더,게리맨더링은 웬만한 우리말 사전이면 다 실려 있는 말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당략적 선거구획정­. 그 말의 유래가 19세기초 미국 매사추세츠주지사 엘브리지·게리(1748∼1814)의 이름에서 유래함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정략적으로 선거구를 가르다 보니,부자연스런 불도마뱀(셀러맨더) 모양의 선거구도 생겼더라고 해서 게리+맨더의 신어가 생겨난 것이다.그때 게리맨더링의 위력은 1812년 주의회 선거결과로 익히 증명이 되고 있다. 게리지사의 여당은 5만여표대 5만1천여표로 득표에 지고도,의석 29석을 획득,11석 밖에 얻지 못한 야당을 압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인심을 잃은 게리는 이듬해 지사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들었다.

게리는 미국의 독립투사요,독립선언 서명자의 한 사람이다. 말년에는 미국 제4대 제임즈·매디슨 대통령(1761∼1836)의 부통령을 지냈다. 그같은 애국적인 경력과 정치역량에도 불구하고,그는 게리맨더링이란 악명만을 후세에 남겼다. 그의 악명은 선거제도란 조작하기에 따라서,유권자의 투표성향과는 전혀 다른 선거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는 교훈으로 남아있다. 유신시절,득표에서 야당에 뒤진 여당이 국회의석 3분의 2선을 유지했던 사례도 마찬가지다.

게리가 대통령으로 모셨던 매디슨은 또 다른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매디슨은 지금까지 미국 헌법 개정 17개 조항중 첫 10개 조항,이른바 권리장전의 주창자중 한사람이다.

당초 그가 1789년 제1회 연방의회에서 발의시킨 개헌안은 모두 12개 조항이었다. 이중 10개항은 각주 4분의 3(당시는 9개주)의 비준을 받아 1791년에 발효,미국시민의 민주적 여러 권리를 보장하는 금과옥조로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비준을 받지 못한 2개 조항중의 개헌 제12조다. 그 내용은,상·하양원 의원의 세비액을 변경시키는 내용의 입법은 다음 하원의원 선거가 있기 전에는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개정조항은 오래 잊혀져 왔으나,근래와서 부활이 됐다.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긴 각주에서 2백년 묵은 개헌 제12조를 이제라도 비준하자는 운동이 일어나,작년의 캔자스,플로리다양주를 포함한 34개주가 이미 비준을 마친 것이다. 이제 4개주만 합세하면 그 조항은 효력을 발생한다. 국회가 「중이 제머리 깎듯」 세비인상을 결의한다 해도,다음 선거가 있기 전에는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2백여년전 미국 「헌법의 아버지」가 남긴 교훈은 국회나 정치인들의 「제머리 깎기」를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교훈속에는 세비만이 아니라 게리맨더링 같은 선거제도 조작도 포함된다고 할 수가 있다.

지금 막바지 13대 국회가 바야흐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그 같은 매디슨의 교훈을 일깨운다. 반면교사 게리지사를 생각하게 한다.

잘라말해서,지금의 선거법 협상이란,여·야의 당리와 유세한 사람의 사리를 안배,선거구를 분구·증구하여 나누어 가지며,공영을 빌미로 더 많은 선거비용을 국민들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바로 게리맨더링 협상이요,「제머리 깎기」다. 정치자금법 협상도 다를 것은 없다.

그것은 마치 출전을 앞둔 운동선수끼리 경기규칙을 고치고 출전료를 멋대로 책정하자는 것이나 같다. 규칙을 관장할 심판은 간곳없고,출전료를 감당할 관객도 안중에 없으니 분명 잘못된 일이다. 이처럼 잘못된 일을 국회의원 임기말마다 되풀이하는 것이 우리 정치다. 지금 선성이 높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협상은 그런 잘못에서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잘못이 이처럼 분명하다면,여·야협상이 원만하기를 바라지만 말고 고칠 것을 먼저 고쳐야 한다. 매디슨의 개헌 제12조도 이 경우의 참고가 된다. 선거법 개정은 다음 다음 선거에서 비로소 적용토록 하는 것이다. 적어도 목전의 당리·사리를 배제하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현실적이라면,선거구 획정·선거방법 개선 등은 아예 제3의 중립기구에 맡기는 방도를 생각할 수가 있다. 인구이동상황을 살펴 선거구를 조정하는 영국의 「선거구위원회」가 그 좋은 선례다. 우리 경우라면 선거관리위원회에 그 구실과 아울러 선거방법 개선문제를 맡길 수가 있다. 법를 고쳐 선관위의 위상을 높이고,선관위의 선거법 등 개정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다. 여·야 모두 공영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으니,선거공영주체를 높이고,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순리에도 맞는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는 선관위의 거듭된 선거법 개정의견을 번번이 묵살하고,「제머리 깎기」만을 고집하고 있다.

또 선거구획정의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해서 국회 임기말마다 벌이는 선거구협상을 배제하는 방안도 생각함직 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공식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먼저 시·군·구 행정구역 단위로 1인 소선거구를 설정하여 지역대표성에 차질이 없게 한다.

▼다음 선거구 인구의 하한선(지금은 8만8천명)과 상한선(지금은 35만명)을 정하여 표의 등가성·인구대표성을 보장한다.

▼선거구 인구가 하한선을 밑돌때는 인접선거구에 통합하되,통합된 선거구의 규모가 상한선을 초과하면 2인 선거구로 한다.

▼반대로 선거구 인구가 상한선을 초과할 때는,분구를 않고,2인 선거구로 한다.

▼인구이동에 따라 3∼5인구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지금 인구이동 추세로 보아,의원정수가 늘어나고,지금의 소선거구제가 차차 중선거구제로 변모하리란 예측이 가능하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와 그밖의 기술적인 문제는 전문가의 검토에 맡길 수 밖에 없지만,어떤 것이든 확고한 공식을 만들어서 선거의 본질적 의미를 제쳐둔 선거구협상 따위를 다시 없게 했으면 한다. 그랬으면 정치를 보는 피곤함을 조금은 덜겠다 싶어 하는 말이다. 제발 「예측가능한 선거제도」를 만들어 「예측가능한 정치」를 펴기 바란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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