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평화에 서광이 비친다. 시위문화에 대한 의식이 한 단계씩 성숙해가고 있다. 운동권을 주도하는 전대협의 의장대행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평화시위와 투쟁방법의 일대 전환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앞으로 학생운동권은 「화염병」으로 파출소를 기습공격하는 물리력의 사용을 자제하고 국민의 공감을 넓히는 선전활동을 강화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이러한 투쟁방법의 변화는 전대협의 공식결정은 아니나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설명이다. 「파출소를 습격해서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는 자기 비판적인 결론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냉전과 이념체제가 급속하게 붕괴하는 내외정세에 대응하는 운동권의 자세가 주목되며 자성과 자제를 바탕으로 한 현실판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하다.
지난 상반기를 거치면서 운동권은 전례없는 침체의 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고 강경대군의 참혹한 사망으로 야기된 격렬한 가두투쟁은 오히려 시민의 불안감과 위기의식만을 불러 일으켰고 총리 폭행으로 도덕성마저 상실하는 궁지에 몰렸다. 게다가 공산권의 몰락은 운동권의 대안논리에 치명타를 가함으로써 침체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 이후의 산발적인 화염병 시위는 오히려 시민의 저항에 부딪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게다가 주사파가 파도를 탄 운동권의 시위는 학생운동의 본질마저 이탈한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촉발할 만큼 막다른 현실에 직면했다. 결과론이기는하나 운동권의 침체는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세의 급변을 외면하고 정부의 탄압을 부각시켜 매도하지만 국민의 정서와는 일치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독선과 과격성에 혐오감만을 축적시킨 꼴이 되었다. 현실의 논리를 도외시한 투쟁과 선동은 공허하다. 일방적인 주장을 다수의 소리나 의견으로 위장함은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는다. 면학을 저버린 시위투쟁은 자기상실의 무서운 공백만을 남길 따름이다.
이 시점을 우리는 시위문화 정착의 적기로 삼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프랑스의 20만 농민은 그들의 권익을 위해 파리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조용히 해산한바 있다. 의사표시의 자유와 투쟁의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평화적인 시위는 최대로 보장되고 보호받아 마땅하다. 시위만능도 곤란하지만 무조건 억제도 바람직 하지가 않다.
합법의 테두리안에서 폭력을 배제한 평화의 데모와 행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고유권한임을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진심으로 폭력을 포기한다면 공권력의 행사도 유연성을 보여야 옳다. 시위라면 막고 보자는 단순 발상은 폭력시위만큼 위험하다. 생각하며 행동하고,행동하며 생각하는 풍조가 자리 잡으면 거리의 평화뿐 아니라 나라의 안정과 발전의 기틀이 잡혀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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