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에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표현은 기독교의 구약성서 이사야 제2장 4절에 나오는 표현으로 4절 문장 전체는 다음과 같다.「그가 열방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들은 그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하리라」
여기서 「칼을 쟁기로」 만든다는 표현은 전쟁의 도구인 무기를 없애고 그대신 생산을 위한 도구와 수단을 만든다는 뜻이다. 즉 서기전 8세기에 예언자 이사야가 한 이 말은 항구한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태고로 부터의 소망을 예리한 이미지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는 이사야의 비전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인간들은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쟁기를 녹여 칼을 만들어왔으며 드디어 1945년부터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가 지구상에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생각하면 참으로 가공할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지구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화약고 위에 살고있으며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위험을 잊기위해 온갖 반이성적인 행동들을 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이와같은 인류의 자해행위가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마치 인간들이 무한한 지식을 얻기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우리들은 바로 이와같은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28일 부시 미 대통령이 핵무기 감축계획을 발표했을때 이제 우리는 인류역사의 하나의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열강들은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것인가. 지난 반세기동안 계속 늘어나기만 했던 핵무기는 드디어 점차 감축되어 없어질수 있을까.
부시 대통령의 발표는 획기적인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의 배치된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고 해군함정에 탑재된 일체의 핵무기를 철수하며 소련이 동의한다면 다탄두핵미사일도 전면폐지할 용의가 있음을 선언했다. 뿐만아니라 부시 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이틀전에는 파월 합참의장이 의회청문회에서 95년까지 육군병력을 3분의1,해군은 4분의1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유럽 주둔군은 현 수준의 반으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의 발언과 때를 같이하여 소련 국방상 예브게니·샤포슈니코프는 소련병력을 3백만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파월이 발표한 미국의 감군계획과 비슷한 수준의 감군계획이다. 그리고 같은 날 주필리핀 소련대사는 95년까지 소련은 모든 해외주둔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하면서 「소련이 자유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현 상황하에서」 해외주둔 군사기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시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 소련에서의 구데타가 실패한직후 핵무기를 대폭 감축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부시의 결심이 소련의 군사력이 갑자기 줄어 들었다는 판단에 기인한것이 아니라 소련의 내정이 민주화 되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소련과의 군축가능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련의 군사력이나 군사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소련이라는 나라가 민주국가인가 아닌가 하는데 있다는 뜻이 된다.
전통적으로 군축은 국가간에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라도 우선 군축 및 군비통제에 합의함으로써 전쟁도발의 확률을 축소시키는 군사적 기술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현재 미소간에 진행되고 있는 군축협상은 START와 CFE부터 시작하여 군축의 전통적 논리를 뒤집어 놓고 있다. 즉 정치적으로 문제가 풀리면서 그 결과로 군축이 가능하게된 것이다.
철학적 차원에서 생각해보면,부시 대통령의 군축에 대한 인식은 19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의 생각과도 통한다.
칸트는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국 헌법」에 기초한 나라들이 연합체를 구성할때 비로소 항구한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칸트는 국가간의 관계의 자연상태가 평화 아닌 전쟁상태라고 전제하면서도,모든 국가가 「공화국」 체제를 갖추게되면 이른바 세계정부없이도 일종의 국제연합을 구성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면 지금 세계는 칸트의 비전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
소련의 민주화는 칸트의 시대가 오고있다는 희망을 가능케한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보면 칸트의 비전을 향한 전진은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내딛고 있음에 불과하다. 아직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칸트가 뜻했던 「공화국」,즉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헌정체제를 갖추게 되려면 너무도 갈길이 멀고 험난하다.
이것은 오늘의 북한을 보면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결국 우리들은 구약성서의 리얼리즘으로 되돌아 가지 않을 수 없다. 이사야는 「그 (즉 여호와)가 열방사이에 판단」하시게 될때 비로소 「그들은 그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게 될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간의 분규를 판정할 수 있는 권위와 권능을 가진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 한 영원한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뜻이며 군축을 통화 평화의 가능성의 한계를 말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선언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지만 아직도 전쟁의 역사 종식을 기약하지는 못한다.<사회과학원원장·전주미대사>사회과학원원장·전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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