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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꾸짖는다고 될까/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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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꾸짖는다고 될까/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1.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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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말에 진흙 여섯되중국의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황하는 길이가 1만3천6백60리. 「물 한말에 진흙이 여섯되」라고 할만큼 누런 흙탕물이 흐른다. 이 흙탕물은 백년을 기다려도 맑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백년하청」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 황하의 흙탕물에 빗대서 세상의 비리와 부조리와 부패·부정을 한탄하기도 한다. 이 나라 구석구석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그꼴이란 말인가. 유엔가입의 잔치바람에 밀려 빛바랜 꼴이됐던 국정감사는 그야말로 이 나라가 「백년하청」꼴임을 또 한번 노출시켰다. 몇가지 꼽아보자.

법을 짓밟고 정책을 비웃고 세상의 눈총을 거스르는 호화별장이 경기도에만 6백채라고 했다. 1백여채는 농가를 불법개축한 것이고,상수원 보호지역인 호수에 개인 나루터까지 갖추고 있고,그린벨트안에 일흔세채가 있다고 했다. 모두 21만평이나 된다는 얘기다.

6공화국이 골프공화국이냐는 말이 빗발치고 있다. 전국에서 운영중이거나 건설중인 골프장 총면적의 37%는 손을 댈수없는 숲인 「보전임지」요,61만여평의 국유림까지 임대해줬다 한다. 「골프도」라는 핀잔까지 나오는 경기도에서 골프장 총면적이 공장의 총면적과 맞먹고,34개 골프장에 올들어 8월말까지 약 8톤의 독한 농약이 뿌려졌다.

전국 사유림의 42%는 외지인 소유이고,남해안의 섬 3백63개중 72개섬 백만평이 서울이나 부산사람 소유라고 했다. 올들어 첫 석달동안에만 은행돈 1백50억원이 땅투기로 들어갔고,서울에서는 아방궁같은 호화빌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기야 부동산 얘기라면 신물이 날만큼 듣던 얘기니까 새삼 떠들일도 아니다.

○70년대 걱정대로

전 국토면적의 1.1%에 지나지 않는 서울과 부산에 인구의 33%가 몰리고,금융기관의 돈 64%를 쓰고 있다. 겉보기엔 선진국 뺨치는 대기업들이 아직도 개인소유 구멍가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라하면 기업주가 47%의 소유지분을 갖고있어 재벌집중이 점점 더해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20%를 넘는 일이 드물다니까,우리의 대기업은 덩치 큰 구멍가게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라 은행빚이 자기 밑천의 4배가 넘고 있다.

떳떳지 못한 「큰 손」들은 가짜 이름으로 은행에 91만개의 통장을 갖고있고,1조원 가까운 돈을 움직이고 있다. 법을 어기고,도덕과 상식을 짓밟는 불로소득이 아니라면 가짜 이름으로 얼굴을 가릴 리가 없을 것이다. 70년대 서울의 강남에서부터 투기바람이 불때 사람들은 말했다. 불로소득이 판치면 누가 땀 흘려 일하고,허리띠 졸라매고 저축하겠느냐고.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도록 투기바람은 잡히지않고,불로소득은 세상을 비웃고 있으니 세상이 온통 「노세 노세」판이 됐다면 예상대로 된것이나 다름없다.

그뿐만 아니다.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지만 「망국 과외」가 또 다시 표면화하고 있다. 전국 5대도시의 중고생중 3분의 1이 넘는 35%가 괴외공부를 하고있고,서울에서는 절반이 과외를 하고있다(서울 YWCA)조사. 중고생 열명중 아홉명은 학교수업 내용중 절반이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몇십년동안 역대정권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꾼 입시제도와 교육개혁에도 불구하고,「망국 과외」가 또다시 등장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백년하청」이다.

○「평등」 요구하는 백성

엄청난 국제수지 적자와 물가에 쫓기는 위기의 책임을 「내 낭탁」에만 열중하는 국민 모두에게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입으로만 떠들고 막무가내 포기하려 하지않는 비리와 부조리와 부패를 고치지않고는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돈이건 권력이건 명예건 「가진자」가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은채 위기를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끊임없는 개선·개혁없이는 자본주의도 자멸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특히 권력과 부의 편재,그리고 투기를 막는 것이 자본주의 생존의 전제라고 했다.

경제기획원을 물러나 이제는 연구실로 돌아간 조순씨의 말도 주목할만하다. 「효과적인 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질서체제를 확립하고,「인간에 의한,인간을 위한 경제발전」이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고다. 결국 갤브레이스의 경고와 같은 말이다.

조선왕조 5백년동안 끊임없이 되풀이돼온 논쟁과 정권교체는 모두 권력과 부와 명예의 독점을 허용하지않는 평등의식의 산물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 백성의 피속에는 강한 평등의식이 흐르고 있다.

그런 백성을 앞에 놓고,본질적 개혁을 외면한채 「노제 조제」 풍조만 꾸짖는다면 이 나라의 위기는 그야말로 「백년하청」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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