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핵감축선언 배경·의미/소 팽창주의 포기따른 전략수정/국방비 감축압력 작용… 폐기시기·증명 과제로【워싱턴=정일화특파원】 부시 미 대통령의 대대적인 핵감축 계획은 국내외적으로 다같이 적절한 시기에 나왔다.
국제적으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지난 8월의 소련 쿠데타실패이후 동서관계가 위협에서 화해쪽으로 1백80도 돌아섰기 때문에 어차피 미국의 세계방어 전략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돼 있었다.
소련이 공산 팽창주의를 공식적으로 포기했고 쿠바·아프가니스탄 등에 대한 군사지원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기본적으로 소련위협 제거를 국방정책의 근본목적으로 해온 방어전략은 옛 전략 그대로는 사실상의 이론적 근거를 잃은 셈이 돼 버렸던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체니 국방장관의 계속적인 강경방어 자세는 그동안 상당한 반발을 샀었다. 민주당측은 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소련이 저렇게 변했는데 왜 국방비를 계속 3천억달러나 쓰려하느냐』고 윽박질렀다. 지난 25일에는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서 『국방비를 향후 10년간 4천억달러는 삭감해야 한다』고 조목을 대면서 발표해 부시 행정부는 약간 곤경에 빠지는 듯했다.
한 국방고위 관리는 이날 부시의 제안에 관한 배경설명에서 이번 핵감축 계획이 사실상 소련사태 직후부터 논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 쿠데타가 실패한후 부시는 국방 고위관리들을 불러 『핵전략을 바꿔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중 보다 주목할 부분은 단거리 핵무기의 거의 전면적인 폐기이다. 전략핵무기의 경우는 미소가 지난 20년간 계속 그 감축필요성을 논의해 왔을뿐 아니라 6월 부시고르바초프 사이에 서명된 START에서도 향후 보다 진전된 감축을 약속했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유럽 등에 배치돼 있는 단거리 핵무기는 미소간의 그많은 START협상에서 한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핵무기의 존재여부까지도 확인해 주지않는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Neither Confirm Nor Deny)는 소위 NCND정책을 써왔었다.
단거리 핵무기는 이른바 지역방어용(Theatre Nuclear Weapon)으로 단거리미사일인 어네스트존이나 대형 장거리포 항공기용 중력탄 등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이런 단거리 핵탄두를 미국은 유럽,아시아 등에 약 3천개 배치하고 있다. 소련 역시 1천개 이상의 단거리 핵무기를 배치해 놓고있다.
부시 대통령은 바로 이 지역배치 단거리 핵무기를 거의 전면적으로 철수한다는 것이다.
대신 상대방의 제한적 핵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비핵무기 방어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유럽의 경우는 항공기탑재용 핵무기는 그대로 보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지상발사 단거리핵미사일의 전부와 해군소속 단거리 핵무기의 대부분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처럼 항공기 탑재 핵무기가 배치돼 있는 경우에는 분쟁위험에 대비해 일부가 존속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부시대통령은 걸프전쟁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로부터 우방을 지키기 위해서도 비록 규모는 줄어들더라도 완전히 능력있는 군사력을 배치해 안보공약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1시간전 백악관 기자실에서 국방고위관리들이 실시한 배경설명에서는 3가지 문제점이 제기됐었다.
첫째는 이 거대한 핵무기 감축계획을 언제부터 실시할 것이냐하는 것이었다. 이 고위관리는 확실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부시대통령도 「일방적인 감축계획」을 발표하면서 소련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고,핵탄도미사일을 개발했거나 개발중인 세계 20여개 국가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둘째는 증명문제다. 그 많은 핵무기의 수거·파괴·감축을 누가 감독하고 이를 증명하느냐하는 것인데 이 문제 역시 아직 확실한 결론이나 있지 않다.
셋째는 잠수함발사 미사일을 일정수준 유지한다는 것이다. 고위관리는 잠수함 발사미사일은 기동성때문에 기장 안전하고 신속한 핵무기로 평가된다면서 START확대감축의 효과가 충분히 증명될때까지는 이를 보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의 핵무기감축 발표는 적어도 환경적으로는 대단한 성공을 거둘 것이 확실하다.
우선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START협정을 훨씬 뛰어넘는 확대 핵축소를 감행하게 됨으로써 핵감축의 기선을 잡는 승리를 거뒀다. 그 결과는 어쩌면 이라크,북한 등의 핵개발 계획을 보다 강력히 저지하는데 광범한 국제적 지지를 얻어내게 될것이다.
국내적으로는 『핵보유가 과다하지 않는가』라는 민주당측의 공격을 피할수 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면서 『핵감축 계획이 발표됐다고 해서 당장 국방비를 줄인다든지 국방비를 국내문제를 위한 예산으로 전용해서는 안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부시대통령은 일단 『소련이 변했는데 국방비가 너무 많지 않는가』라는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이론을 펴놓은 셈이다.
◎한반도 미치는 핵감축 파장/북 사찰수용·한반도 비핵화 발판/남북 군축 진전·북일미 관계 돌파구 될수도
부시 미대통령의 단거리 전술 핵폐기 선언은 주한미군 보유 핵의 철수가 시간문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 최대 장애요인중 하나였던 한반도 핵문제가 쟁점에서 해소됨을 의미한다는게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와함께 가장 강력한 전쟁억지 수단이었던 주한미군 보유핵의 철수는 우리에게 안보정책의 일대전환을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가 이룩될 경우 동북아 지역 전체에 대한 비핵지대화 문제가 제기될 것이며 이는 동북아지역의 전반적 질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정부와 미국은 핵존재 여부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CND)는 기본입장에 따라 한반도에 핵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으나 우리나라에 여러종류의 전술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는것은 거의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 협정서명을 거부하는 구실이 되는 등 북한 선전공세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NCND정책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연구기관과 외신들은 구체적 탄두수까지 거론해가며 한반도에 핵이 있음을 주장해왔다. 핵폭탄,8인치용과 곡사포용 핵폭탄,미사일용 핵탄두 핵지뢰 핵배낭 등이 우리나라에 배치돼 있다는 주장들이었다. 한반도에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술핵 등은 이번의 선언으로 모두 폐기 대상이 된다.
정부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핵폐기 선언이 한반도문제 해결과 남북문제의 진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 핵이 철수되면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할 명분을 잃게 될것이며 그렇게될 경우 한반도는 무핵지대가 되어 첩첩이 가로 놓여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의 핵폐기 선언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평화구도 정착이 더욱 가속화될것』이라면서 『남북대화에 긍정적 영향은 물론 남북한 군축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10월22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4차 고위급 회담에서 구체적 성과가 도출될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핵사찰 거부로 난관에 봉착돼있던 일·북한수교와 미·북한 접촉도 새로운 출구를 찾아 북한의 개방을 촉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핵폐기 선언에 앞서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의를 한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이미 논의되었고 회담이 끝난직후 한미 실무자들이 하와이에서 만나 구체적 논의를 했다.
지난 24일에 있었던 부시 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을것임은 물론이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유엔연설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포기를 전제로 한반도 핵에 대한 논의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남북 정상회담이 자신의 임기중에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등 남북문제가 급진전 될것임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핵폐기 선언이 한반도 문제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행사할것은 확실하나 미국의 핵우산 아래 놓여있는 우리의 안보상황이 급격하게 변화될것 같지는 않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한반도는 계속해서 미국의 핵우산아래 있게될것』이라면서 『지상전술핵이 폐기된다고 해도 공중핵과 장거리핵 등으로 우리의 안보가 보호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핵폐기가 가져올 여러 영향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한반도 핵철수를 보는 북한의 입장이다. 북한은 연형묵총리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문제를 본격 거론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오는 10월4일 예정인 김일성의 중국 방문때에도 핵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4차 고위급 회담에서 드러날 북한의 태도를 보면 핵폐기에 대한 입장이 보다 구체적 윤곽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한 정부당국자는 『제4차 고위급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이나 군축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렇게 될 경우 남북문제를 푸는 최고의 기회가될 정상회담을 위한 단서가 마련될수도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될 경우 우리정부가 평화협정 체결과 군축문제 등에 있어 보다 자신감 있는 자세를 보일것임은 물론이다.<한기봉기자>한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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