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유지활동」 협력 명분/미·일 주도 새질서 공언도/“경제대국” 업고 안보리 상임국까지 눈독【동경=문창재특파원】 자위대를 해외분쟁 지역에 파병하려는 일본정부의 결정이 국제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된 가운데 일본의회는 24일 이 법안의 심의에 착수했다.
국제평화유지활동에 협력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너울을 들추어보면 정치대국 군사대국에 야망이 드러난다. 중국과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 인접국가들이 일본의 끈질긴 자위대 파병 노력을 경계하는 것도 그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에는 아직도 「군국 일본」의 팽창주의 피해 당사자들이 많이 살아있지 않은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협력하기 위해서」라는 일본정부의 파병목적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화유지군(PKF)의 일원으로서 캄보디아에 자위대를 파병하는 것이 선례가 된다면 해외파병이 기정사실화되어 버린다. 한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난다고 가정할때 일본 자위대가 오지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평화유지활동 협력이란 「공식명분」에 일본의 안보에 관계된다는 자국방위 명분이 추가될 것이다.
실제로 일본정계와 정부지도층에는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한 「정치대국화」 야욕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자민당 최대파벌 다케시타(죽하)파 회장대행인 오자와(소택일랑) 전 간사장은 최근 유엔군과 다국적군에까지 자위대를 보내 국제적 발언력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었다. 그는 『냉전이후의 세계질서는 미국유럽공동체일본의 3극 체계가 주도하게 된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한 미래의 구도에 대응하려면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력을 가져야 하고,정치력의 근원은 군사력의 뒷받침에 있다는 논리이다.
최근에는 은퇴한 구리야마(율산상일) 전 외무차관은 90년 5월 「외교포럼」이란 시사잡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중소국 외교로부터 구미와 함께 새질서 창조에 참가하는 대국외교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바 있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자는 말만 없을뿐이지 정치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역 외무성 고위간부들도 『사람·돈·정치적 역할이 3위1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서슴없이 제기한다. 더욱 겁나는 것은 방위청 간부들의 발상이다. 그들은 미일 안정보장 체제의 「지구규모적 확대」를 꿈으로 삼고있다. 미국과 일본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전보장에만 협력할 것이 아니라,대상지역을 전 세계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이후의 국세사회에서 지역분쟁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를 다스리는 미국을 도와 일본이 후방지원 체제를 갖출 용의가 있음을 뜻한다.
일본 방위당국이 이같은 자부심을 가지게 된것은 걸프전쟁때 놀라운 파괴력과 정확성이 입증된 미국의 신형무기들이 일본의 전자기술에 힘입은 것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단호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화제작의 저자 이시하라의원(석원신태랑·민자)은 이미 이를 온 세계에 자랑한바 있다.
일본이 1956년 유엔가입이후 30년이 넘도록 유엔평화유지군활동(PKO)에의 자위대 파병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유엔안전 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숙원때문이다.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유엔경비를 부담하고,미국 소련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비용을 PKO 활동에 지원하는 나라로서 돈값에 맞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KO에의 자위대 파병과 함께 유엔헌장의 「구적국조항」 삭제에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도 같은 목적에서이다. 구적국 조항이란 유엔헌장 제53조 107항이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국의 적이었던 나라들에게는 안보리 승인없이도 강제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 조항은 해당국명을 명기하지 않고 있지만,일본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등 7개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과」가 있는 이 7개국을 특별히 경계한다는 유엔헌장이 살아있는한 상임이사국에의 꿈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일본은 올봄부터 이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노력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외무장관이 미 소 불 영 중 안보리상임이사 5개국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삭제노력에 협조를 당부하고 있으며,관계국 관리들이 일본에 올때면 어김없이 이 주문을 꺼내곤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일본만이 2차대전 도발에 대한 진정한 속죄없이 멍에만 풀어버리려는 몸부림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한번 일본의 도덕성을 생각하게 된다.
옛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웃들이 우려하건 말건 해야할 일을 마다하고 내욕심만 채우겠다는 오늘의 일본이 과연 세계평화를 운위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대국 윤리소국」이란 내부비판에도 귀를 틀어막는 일본 지도부의 고집스런 정치대국화 집념이 어떤 폭풍우를 몰고올 것인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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