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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실패」,어디까지…/박승평(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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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실패」,어디까지…/박승평(아침조망)

입력
199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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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을 4로 나누면 당연히 37.5가 그 정답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마이너스 100이 사실은 오늘의 정답이라는 엉뚱한 「개똥수학」이 시중에 횡행한다고 한다. 웬만한 사람이면 알겠지만 국제수지 1백50억달러 흑자가 불과 4년만에 1백억달러 적자로 곤두박질친걸 민심은 그렇게라도 꼬집고 자조해야 조금은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사실 우리 형편은 개똥수학 정도로 웃어넘길 일이 못된다. 당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는것 이상으로 뾰족한 수란 없다니 뒤늦게 비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경제와 사회가 드디어 구제불능의 남미형으로 추락하는게 아닐까하는 강한 의구심마저 생겨나고 있다면 과연 지나친 것일까.

경제학에서는 「시장실패」와 함께 「정부실패」라는 용어가 곧잘 쓰인다. 자본주의의 금과옥조인 시장경제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창의적 성장 및 소득이나 부의 공정한 분배에 실패하는걸 시장실패라 하고 그런 시장실패를 정부의 개입으로 치유하려하다 문제를 악화시키는걸 정부실패라 일컫는다. 그런데 정부실패의 구체적 원인으로 꼽히는게 정부가 파악한 정보와 지식의 불완전성,동기부여의 결여,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정책담당자의 편견개입 등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연초에 국제수지 적자폭을 30억달러 정도로 가볍게 잡고 성장률은 반대로 높여잡았으며,국민들의 과소비를 조장·방치한채 근검·근로의 동기부여에 무능했고,경제시책이나 재정을 경제원칙보다는 정권적 차원의 정치적 잣대로 방만히 운용했으며,부처간이나 당정간에도 손발이 맞지않는 모습을 보여온 우리 정부야말로 정부실패의 전형적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남미형 증후군이라는 것도 그 시작은 별것이 아니없을 것이다. 시장실패와 정부실패가 초기에 잡히지 않고 무한정 거듭되면서 급기야 국가실패로 나라가 거덜나는 경지에 이르게된데 바로 남미형 증후군의 실체인 것이다.

남미 페루에서 후지모리 대통령의 고문역을 맡고있는 데소토씨는 최근 누적된 외채와 빈부격차,엄청난 부패와 살인적 인플레로 조락을 거듭하고 있는 남미형 국가실패의 참담한 실상을 외지에 밝힌적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페루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국가따로 국민따로이다. 국가의 근간을 지탱하는 공권력과 법질서와 조세마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아 인구의 60∼70%가 법의 테두리밖에서 일하면서 세금도 내지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불법자로 몰수도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법자체가 기능하지 않는데 불법 그 자체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원인이 극에 이른 정부 국민간의 불신과 부패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데소토씨는 정부와 국민간의 중단없는 대화와 신뢰회복,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회복과 책임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하면된다』는 정신으로 한달음에 중진국에 이른 우리사회를 남미와 비교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비상을 부른 정부실패의 전형에다 근검·근로와 창의·경쟁력을 잊은채 놀이와 투기에 열중하는 국민과 기업의 안이한 자세 등에서 남미행 특급의 매표창구에 모두가 줄지어 선듯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불안감을 최근 더욱 증폭시켜 주는게 또 있다. 남미처럼 불법을 방치하고 그 존재에 마냥 무감각해지는 무법증후군의 어두운 싹들이다. 소위 온갖 사건들이 터져나와도 거의 모두가 「알려진 비밀」들로 간단히 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멀쩡한 무릎뼈를 일부러 떼어내 최근 터져나온 징병검사 부조리에 잇달아 연쇄적으로 터져나오는 사학의 돈받고 입학시키기,화재예방 점검이 돈거두기 업무로 전락한 소방비리,성급한 신도시 건설로 빚어지는 불량자재 시공의 난맥상,누가 뭐라해도 끝까지 봐주는 한보특혜 등등….

그런데 불길하게 느껴지는건 사건이 터졌을때마다 관련자들이 보이고 있는 『나만 그랬느냐』는 볼멘 태도이다. 구속된 대학 이사장이나 폭력단 두목이 그런 태도에서 어슷 비슷하고,정부도 어쩌다 새발의 피처럼 노출된 「알려진 비밀」이나 치죄할뿐 지천에 깔린 것엔 손을 제대로 못쓰고 있고서야 언젠간 국민의 70%가 법의 밖에서 사는 페루꼴이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선거공약을 지키려 2백만 가구는 국제수지적자·인력난·물가난에도 아랑곳없이 지어야하고,당장 생색이 나지않는 교육은 외면하면서 기여입학제라는 고약한 떡이나 던져주려는 우리의 「정부실패」 행진들이 과연 어디까지 뻗쳐갈 것인지 두루두루 걱정이다.

세상살이 이치란 어찌보면 간단할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정부실패를 막기위해 국민정책의 신뢰성 회복,공공문제 해결의 국민적 공감대 형성,예산낭비 억제 및 우선순위 확립,정부기구 및 인원의 합리적 조정 등을 복잡하게 꼽는다. 하지만 먼저 정부가 우선 정신차려 제대로 살피고,현명하고 엄정히 일을 처리해 영을 세우면 국민이면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그런 상호신뢰와 보완이 오늘과 같은 정부실패의 피해를 합심해 하루빨리 줄이고 남미행 특급열차를 세울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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