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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와병 이상열씨 첫 시집/「전신마비 절망」 시로써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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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와병 이상열씨 첫 시집/「전신마비 절망」 시로써 화해

입력
199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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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워드프로세서 겨우 조작/2년전 아내마저 딸 데리고 떠나/“훗날 딸들 시집보고 내 사랑 느꼈으면…”굳어버린 손대신 입으로 시를 쓴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돼 10년째 누워있는 이상열씨(45·경북 포항시 환여동 해림아파트 나동 204호)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한자 한자 워드프로세서의 키판을 눌러쓴 시들을 모아 첫시집을 낸다.

82년 포항제철 하청회사인 삼풍공업에 입사,현장실습도중 추락해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이씨는 2년여의 병원생활끝에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목아래 전신이 완전마비돼 손가락 끝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상의 「식물인간」이 됐다.

하루종일 꼼짝도 못하고 누운채 절망에 빠져있던 이씨는 88년 동생 상길씨(38)가 워드프로세서를 마련해 주면서 삶의 희망을 되찾기 시작했다. 동국대 국문과를 거쳐 한때 교직에도 몸담았던 이씨는 시를 쓰게되면서부터 세상에 대한 원망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꾸어갔다.

『외롭고 소외되었다고 생각될때/아직 나에게/머리를 씻겨주고 밥을 먹이고 관장을 해주는 아내가 남아있고/추하게 변한 나의 얼굴에 더럽다하지않고/입맞춤해주는 두아이가 있음에/감사기도를 드립니다』(감사기도)

그러나 7년동안 남편의 손과 발이 돼 주었던 아내(35)가 2년전 더이상 견디지못하고 이씨가 가장 사랑했던 두딸 슬기(12)와 송이(9)를 데리고 떠났을 때 사고때보다 더큰 슬픔과 고통을 겪었다.

산재보험금 등으로 받은 5천만원을 모두 치료비·생활비로 날리고 움직이지 않는 몸뚱아리 하나만 남은 이씨는 동생의 셋집으로 옮겨 노모(71)와 제수(30)의 수발을 받으며 미친듯이 시를쓰며 고통을 삭여나갔다.

당시의 시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그대로 표현돼 있다.

『소꿉놀이 하다말고/걱정스런 얼굴로 들어왔다/막내딸 송이가/아빠,나 결혼할때까지 나을수 있어?/휴­그럼됐어 결혼식때 나 신랑한테 데려다 줘야지/쪼르르 또 바깥에 놀러나간다/환히 웃으며/가슴 한귀퉁이/무너지는소리 들리고/비수로 찔리는 아픔을 느꼈다』(신부입장)

이씨가 지금까지 쓴 시는 모두 2백여편. 초기의 우울함과 어두움은 『글을쓰는 과정에서 미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돋아나면서』점차 밝고 희망찬 분위기로 뚜렷하게 바뀌어 가고있다.

요즘도 시를 쓰는 이외에 역사·문학서적을 매달 20여권씩 잃고 음악을 듣는 이씨는 앞으로는 소설까지 써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제수 민보경씨는 『시아주버니는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항상 밝고 맑은 심성을 지니고 있는분』이라고 말한다.

습작원고를 본 주위사람들의 성화로 76편을 골라 책으로 내게된 이씨는 『고통을 극복하고 사랑을 잃지않기 위해 시를 썼을뿐 남에게 읽혀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못했다』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작은바람이 있다면 훗날 내딸들이 자란뒤 이 시집을 보고 못난 아빠의 사랑을 느꼈으면 하는 생각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시집원고는 장애인문인협회(회장 방귀희·여)의 주선으로 장애인·자원봉사자들이 교정·편집·삽화까지 맡아 이달말 새샘출판사(대표 이현준·27)에서 「우리가 살다 힘들때면」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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