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붕 서경보스님은 일붕선교종 종정이다. 앙드레 김은 패선 디자이너다.두사람은 나이가 20세 이상 차이가 난다. 외모도 크게 다르다. 앙드레 김은 180㎝ 정도의 키에 머리칼도 장발에 가까운 반면 일붕스님은 체구도 작은편에 속하고 머리는 물론 삭발을 했다. 두사람의 인연을 찾고 싶어 일붕스님에게 『혹시 현대감각을 살린 가사에라도 뜻이 있어 앙드레 김 같은 디자이너에게 주목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이처럼 두사람은 활동분야 등이 다르고 인연이 멀다. 스님과 패션디자이너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지만 딱 한가지 점에선 길을 같이 한다. 해외활동이다. 그것도 남들이 해외진출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60년대부터 시작했고,그 근거지를 서울에 두고 한국의 것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똑같다. 바로 일붕은 한국 불교 세계포교의,앙드레 김은 한국 패선계의 해외진출의 선구자이다.
일붕스님의 해외진출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일붕언연록에 그의 연보가 자그마치 23페이지에 걸쳐 소개되 있다. 이중 20페이지 정도는 해외활동 내용이다. 그의 뛰어난 해외포교는 주로 해외에서 받은 삼장법사 등 71개의 각종 명예 박사학위,어리둥절할 정도로 많은 각종단체의 직함과 저서 5백55권이란 욕심이 뒷받침 한다.
일붕스님의 해외포교는 64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환교수로 갔을때부터 머리를 든다. 아무도 한국 불교를 해외에 소개한다는 생각조차 못할때다. 65년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그를 미국 포교사로 임명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계기로 본궤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동국대 교수로 근무하면서도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미국·인도·스리랑카 등으로 한국불교 소개에 나섰다. 종단이 종권과 재산싸움으로 어지러울 때도 그만은 해외포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들이할 때마다 박사학위를 받거나 외국종단의 법왕·고문 등에 추대되고 귀국해서는 그 결과를 홍보했다. 이같은 모습을 보고 일부에선 「돈키호테 같은 스님」,「박사학위와 감투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스림」,「매스컴 타기 좋아하는 스님」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일붕은 이같은 험담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포교의 길을 계속했다. 지난해엔 서울에서 열린 제17차 세계 불교도대회의 대회장을 맡기에 이르렀다.
앙드레 김의 해외진출도 일붕스님이 걸은 길과 비슷하다. 한국 패션계가 양장점 형태를 벗어나려고할 즈음인 66년 『한국의 훌륭한 문화·예술 및 지적수준을 세계에 알리면 한국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처럼 세계 패션계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의상발표회를 가졌다. 그 당시로는 대단한 용기였다.
이를 계기로 그의 해외발표회는 거의 해마다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파리·뉴욕·LA·오사카·샌프란시스코 등에서 20회 가까이 발표회를 가졌다. 지난 8월18일 호놀룰루에서 발표회를 가져 호평을 받기도 했다. 내년엔 위성턴에 이어 바르셀로나 올림픽 패션도에 초청받아 놓고 있다.
그도 역시 해외활동과 적극적인 홍보활동 때문에 「주제파악을 못하는 디자이너」,「매스컴 타기 좋아하는 디자이너」란 묘한 뒤소리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일붕을 빼고 해외의 한국불교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패션계의 해외진출엔 앙드레 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국내에 없다. 이들에 대한 험담은 선지자는 고향에서 박해받는다는 말과 연관시킬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한쪽에선 나온다.
외국것이 정신없이 몰려오고 또 너도나도 외국으로 몰려나가 과소비하는 시대다. 정부까지도 외국에 펑펑 선심쓰는 상황에서 일붕과 앙드레 김의이 단기간의 업적에 밀고 업적에 매달리지 않고 꿎히 차근차근 나가는 해외진출이 새삼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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