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혈해지창」 각색작품… 입장표명 유보검찰이 한 극단의 질의서 때문에 한달가까이 고민을 하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 혁명가극 「피바다」의 모체인 30년대 사실주의연극 「혈해지창」을 각색,공연키로 한 극단 세계로의 대표 이상화씨가 지난달 11일 질의서를 보내 이 공연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숙제를 떠맡겼기 때문이다.
이씨는 질의서에서 『「혈해지창」은 중국과 조선인 항일투사가 협력,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내용으로 김일성의 항일투쟁과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피바다」와는 주제에 차이가 있다』며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대립이 생기기 이전에 만주에서 항일투쟁에 나섰던 우리 민족사의 한 시대를 재조명하고 우리문화의 뿌리를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공연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혈해지창」은 30년대 만주에서 첫 공연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연극의 초기작품으로 59년 연변대 조선문학부에 의해 「까마귀」라는 필명의 필사본이 발견됐고,지난해 9월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가 「문학사상」지에 소개해 국내에 알려진 작품이다.
검찰은 이씨의 질의를 받고 「문학사상」에 전재된 「혈해지창」 원문내용과 국가보안법 등을 검토,이 「남한판 피바다」의 곳곳에서 사회주의혁명 찬양 등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검찰관계자는 『이씨가 대본을 제출하지 않아 이적성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미수교국 작품의 심의는 기본적으로 문화부의 소관사항』이라며 『불법행위를 하기도 전에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문화부를 통해 공연윤리 심의절차를 거치게 한뒤 연극이 공연될 경우 실제 행위예술의 이적성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유보적 태도를 취한채 일단 질의서를 반려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태도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추진되고 동구권 영화가 서울에서 상영중인 현실에서 검찰이 섣불리 이적성 여부를 판단할 경우 예술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검찰이 이 작품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여론에 불씨를 제공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놓고 있다.
북한작품이 아니고 저작권상의 문제도 없기 때문에 공연에 문제가 없을것이라면서도 공안당국의 판단을 요청한 극단측과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적극적 판단을 회피하는 검찰의 모습은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상존하는 이념갈등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재학기자>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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