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선박편 부산들러 수소문/“올 추석엔 돌아가신 부모님께 떳떳”백일을 갓지난 젖먹이때 일제에 의해 징용당한 아버지에 안겨 사할린으로 건너간 소련교포 오상철씨(52·사할린 코르사코주 거주)가 52년만에 대한적십자 부산지사의 주선으로 꿈에 그리던 외삼촌 배효식씨(65·경기 동두천시 광암동 487의 36),이모 배성희씨(63)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오씨는 『젖먹이때 고국을 떠나 고국에 대한 기억이 없던탓에 더욱더 그리움은 컸었다』며 외삼촌과 이모를 얼싸안고 울먹였다.
이모 배씨는 『조카가 사할린으로 이주당하기전 보았던 언니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며 50여년만에 보는 조카의 뺨을 비비며 감격해 했다.
외삼촌 배씨도 오씨가 사할린에서 가져온 어머니 배정옥씨(지난 75년 작고)의 사진을 보며 『생전에 누님의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보게되길 갈망해 왔는데…』하며 보게 오씨의 팔을 끌어 당겼다.
현재 사할린 코르사코주 국립해상선박 수리소에서 선박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는 오씨는 지난 7월23일 부산의 대선조선(주)에서 수리하기 위해 소련선박 4척이 오는편에 승선,처음으로 고국땅을 밟게되자 혈육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극적인 상봉을 이루게 된것.
오씨는 『지난 88년 작고한 아버님이 자신은 누님 하나밖에 없는 외동이지만 외가쪽은 형제가 많아 혈육이 있을테니 고국에 돌아갈 기회가 있으면 꼭 만나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며 『이제야 부친의 소원을 풀게됐다』고 울먹였다.
오씨가 부모에 이끌려 고향인 충남 논산군 채운면을 떠나 사할린으로 간것은 지난 39년 11월께.
오씨의 부친 오상봉씨(1912년생)는 그후 가족들을 이끌고 탄광채탄 작업과 산림벌목작업 등 일제에 의해 갖은 고생을 다했으나 고국귀환의 기회는 해방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씨는 부친보다 13년 일찍 숨진 어머니를 대신해 여섯 동생을 뒷바라지하며 모두 대학까지 보내느라 자신은 고등학교(10년제)만 마치고 1년제 직업학교서 선박기술을 익혀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오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셋째 동생 태식씨(43)는 노스빌스크 종합대학을 거쳐 검사로 일하고 있으며 막내인 주식씨(30)는 소련내의 명문인 블라디보스토크 법률대학에 재학중이다.
오씨는 『해마다 추석때면 부모님이 하시던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왔다』며 오는 15일 부산을 떠나 20일께 사할린땅에 도착해 지내게될 이번 제사는 더욱 뜻깊은 날이 될것』이라며 다시 한번 외삼촌과 이모의 손을 꼭 쥐었다.<부산=김창배기자>부산=김창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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