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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서 짓밟힌 꿈/철창신세 중국 교포처녀(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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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서 짓밟힌 꿈/철창신세 중국 교포처녀(등대)

입력
1991.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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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만주 교포처녀가 울고 있다. 일제시대에 간도로,중국벌판으로 유랑의 길을 떠났던 조선여인의 후예가 풍요와 자유를 그리며 찾아온 조국에서 몸과 마음을 망치고 절망에 빠져있다.절도혐의로 구속돼 서울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불안에 떨고있는 중국교포 남모양(24·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은 4개월전까지만해도 결혼을 준비하던 평범한 처녀였다. 남양은 지난 4월22일 『약을 가져다팔면 시집갈 밑천과 땅뙈기 마련할 돈은 벌어올수 있다』는 주위의 뜬구름같은 말에 빚을 내 중국돈 2천원어치의 약을 사갖고 입국했다.

출입국 검색에서 절반이상의 약을 압수당한 남양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비슷한 처지의 교포들틈에 끼여앉아 행상을 시작했다.

중구 중림동에 사글셋방을 얻어 동료 2명과 자취하며 목돈을 만질 꿈을 꾸던 남양은 두어달이 지나면서 예상보다 못한 벌이와 조국의 뒷그늘을 하나둘 목격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7월초 손님으로 한두번 얼굴을 익혔던 김모씨(30·여)라는 여인이 미모의 남양에게 은근히 말을 건네었다. 『더나은 벌이가 있다』며 김씨가 소개해준 신사장(50)이라는 호인풍의 사내는 다시 세이코·사와(49)라는 일본인 사업가를 소개했다.

세이코씨가 서울에서 지낼 1주일동안 하루 5만엔씩 줄테니 함께 지내달라는 것이었다.

남양은 지난 7월13일부터 1주일간 용산 C호텔에서 세이코씨와 지낸뒤 30만엔을 받았다. 신사장은 이중 15만엔을 소개비라며 뜯어갔다.

중구 인현동에 15만원짜리 셋방을 얻어 혼자 독립한 남양에게 지나 16일 다시 입국한 세이코씨는 또 40만엔을 주었다.

전날 W호텔 빠찡꼬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세이코씨의 모습을 본 남양은 지갑속에 든 세이코씨의 나머지 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미안합니다,세이코상. 이돈만 있으면 혼자 살아갈수 있어요』 노트를 찢어 편지를 써놓고 세이코씨의 2백10만엔을 훔친 남양은 지난 22일 서울경찰청 특수대에 붙잡혔다.

앳된 얼굴의 남양은 유치장에서 검정고무신에 코를 박은채 『다시는 연변으로 돌아갈수 없다』고 울먹였다.<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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