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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사태」의 4각진단/워싱턴(특파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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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사태」의 4각진단/워싱턴(특파원리포트)

입력
1991.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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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세계의 대통령」으로/유럽·일·중동 정상에 전화외교/반쿠데타 형성… 「3일천하」 단막【워싱턴=정일화특파원】 부시 미 대통령은 소련 쿠데타 사태를 전후해 반쿠데타 세계여론 형성에 놀랄만한 솜씨를 보임으로써 20세기 후반의 가장 능력있는 미대통령으로 인정받게 됐다.

쿠데타 실패가 눈앞에 보일때쯤 보리스·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쿠데타 실패추세를 설명한뒤 부시 대통령의 반쿠데타 지원에 경의를 표했었다.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후 옐친은 다시 부시 대통령과 미국 국민에게 감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3일밤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그의 복귀가 가능해지자 옐친 대통령 다음 순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함을 표했다.

22일 워싱턴의 소련 대사관에서는 이례적인 기자회견이 있었다.

좀처럼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던 소련대사관의 빅토르·콤플렉토프 대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한뒤 이번 쿠데타 사건에서 보여준 부시 대통령의 고르바초프 정부에 대한 지지태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미국 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련 쿠데타는 아마도 세계 쿠데타 사상 가장 잘 짜여진 계획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연방정부의 제2인자가 주모자가 되고 그 밑에 4백만 군대를 호령하는 국방장관,강력한 질서유지군을 따로 가진 내무장관 그리고 소련뿐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까지 정보망을 확보해놓고 있는 KGB의장을 비롯해 장관급 인물만 8명으로 구성됐었다.

옐친은 19일 아침 일찍 러시아 공화국의사당에 나와 반쿠데타 전선을 형성한후 거대한 민중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결코 굼뜨지는 않았다. 18일밤 자정을 지나 쿠데타 소식을 전해 듣고 『경악하고 있다』는 보도가 휴가지 케네벙크 포트에서 나온후 19일 일찍 워싱턴으로 날아와 야나예프의 쿠데타를 정면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마치 그가 쿠웨이트전때 발휘했던것 같은 전화외교를 했다. 영국의 존·메이저 총리 프랑스의 프랑수아·미테랑 대통령 독일의 헬무트·콜총리 일본의 가이후·도시키 총리 그리고 중동지도자들까지도 일일이 전화를 걸어 반쿠데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소련 쿠데타를 통해 보인 부시 대통령의 자세는 확실히 확고했으며 그만큼 반쿠데타를 위한 세계여론을 휘몰아 야나예프군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게 됐던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발빠른 반쿠데타 여론화나 거듭되는 기자회견이 야나예프군을 고립무원의 구석으로 몰아넣었다쳐도 그것이 소련 국민이 쿠데타 저지공적을 빛바래게 할수는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보인것처럼 실제 그 나라 국민이 권력자를 쫓아낼 힘이 있는지 없는지에 상관없이 「처치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만일 보수 강경주의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미국이 치러야할 대가가 엄청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경보수의 색깔을 완연히 드러낸 이들 쿠데타군을 규탄한다는것은 거의 당연한 일이다.

70년 공산독재에 시달려온 소련 국민들이 국방장관,내무장관,KGB의장이 포함된 쿠데타군에 맞선 용기는 비할바가 아닌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를 통해 철저히 소련 국민편에 섰으며,이는 소련이 쿠데타 좌절을 개혁정책의 추진력으로 삼아가는 과정에서 빛나는 역할을 하게될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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