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최대의 세기적 사건으로 기록될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는 3일천하로 끝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21일 밤 텔렉스를 숨가쁘게 두들기고 있는 외신은 쿠데타를 주도한 주역 8인의 체포사실을 전해주고 있어 전세계를 경악시킨 궁정쿠데타가 실패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하일·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대외정책과 경제실패,신연방조약에 불만을 품고 거사한 소련의 보수파가 5백만의 적군세력을 등에 업고 오랫동안 계획한 쿠데타를 실행에 옮긴 것이기 때문에 일단 단기적으로는 사태를 장악할 수 있을것이 아니겠느냐고 본예측이 빗나가고 있는 국면의 반전이다.소련 국민은 물론 전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는 다행스러운 상황진전이 아닐수가 없다.
겐나디·야나예프 대통령직무대행을 앞세운 보수파 쿠데타세력은 왜 실패하게 됐는가. 이 순간 이 문제에 대한 해답만큼 전세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의문은 없을 것이다.
첫째의 요인은 쿠데타 발생직후 보여준 러시아공화국 보리스·옐친 대통령의 단호한 거부자세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길을 가지않으면 소련은 살아 남을수 없다는 정치적 신념과 확신을 단호하고 극명하게 나타냄으로써 옐친 대통령은 결정적인 순간에 소련국민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쿠데타의 명분이 설자리를 없게했다. 물리적인 무장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는 국민의 마음속에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을 통해 대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잡아낼수 있었다.
그것은 감동적인 역사의 드라마였다. 소련의 진정한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심금을 움직이는데 성공한 세계적 지도자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옐친이 이룩한 극적 승리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 등 전세계의 일치된 국제여론이 큰 뒷받침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옐친의 승리는 고르바초프의 승리로 연결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6년5개월여에 걸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경제난 해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살아날수 있는 유일한 혈로임을 소련국민이 추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70년 역사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더이상 소련의 생존방식이 아니며,보수파에 의한 보수회귀는 소련국민에게 재앙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소련국민들이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 국민에게는 인기가 없는 지도자였다. 페레스트로이카의 화려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생필품이 달리는 경제난이 심화됐을때 그에 대한 열망과 환호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소련의 국내사정과는 관련이 없는 세계사람들에게만 그는 세기적인 대정치가였다. 그러나 소련국민은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려는 위기에서 고르바초프의 노선이 최선이며 또 차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며 그같은 각성이 인류역사의 새로운 재앙을 막는 극적 반전을 가능케했다고 볼수 있다.
소련의 정변극은 미국를 위시한 EC제국과 일본에 더할 나위없는 역사사적 교훈을 주었음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 등 서방선진국은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노력에 대해 너무 인색했다.
소련의 보수파들이 지적한 것처럼 고르바초프는 바르샤바군의 해체에 따른 동구의 민주화 허용,독일통일의 실현,전략무기 제한의 양보 등 「지각변동」이라고 할만한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고 소련자체의 혁명적 민주화조치를 취해 나갔으나 서방으로부터 응분의 대응조치를 얻어내지 못했다. 소련의 경제체제가 서방의 원조를 소화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거나,고르바초프를 돕는 것이 호랑이를 키우는 격이라는 등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쿠데타를 당하지 않을 정도의 도움은 주었어야 했다.
정변이 난뒤 부시 미국대통령이 적절한 원조를 하지않은 점을 후회한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으나 부시가 곤경에 빠진 고르바초프부터 이득만 챙기다가 보다 큰 외교상의 부담을 자초할 뻔했다는 역사적 비판을 피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이나 통일비용 때문에 여력이 없는 독일은 그렇다 치고 세계에서 가장 경제력의 여유가 있는 일본이 북방4도 문제라는 소아적 이해관계 때문에 소련의 궁지에 냉담했던 점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련이 이번 정변에서 보여준 것처럼 혼란에 빠지고 내란상태로까지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까지 치닫는다면 가장 큰 부담을 안을 나라들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이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미국언론,유럽여론의 판단은 이번 궁정쿠데타가 실패할 것이라는데 일치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꿔말해 고르바초프가 실각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예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 등 서방지도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실각사태에 직면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G7회담은 고르바초프를 구걸하는 소련 대통령으로 비추이게 했을 뿐 도움의 손길을 주는데 냉담했다. 부시 대통령은 보다 안목을 높인 세계질서 개편의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가 되었다.
솔직히말해 이 3일동안 한국은 곤혹한 입장에 있던 나라중의 하나였다. 다이내믹한 북방정책을 펴 한소수교,남북한 UN가입의 과실을 따냈던 만큼 북방외교의 지렛대였고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와의 북방외교를 기초로 마무리 UN정국을 구상해 왔던것도 사실인 만큼 오늘의 반전은 무척 다행이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외교가 집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냉엄한 국제조류의 산물이라는 겸허한 인식아래 미국 등 우방국,그리고 국민여론과 보조를 맞추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이번 사태에서 뼈저리게 배울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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