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전세계적으로 일대충격을 던졌다. 무엇보다도 냉전이후에 등장한 신세계 질서에 큰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1985년 3월에 집권한이후 지난 6년동안 국내정치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일대변혁을 일으켜왔다.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채택,국제질서를 변화시켰고 공산권 내부에도 민주화와 자유화와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미소간의 냉전구조를 변화시켜 베를린 장벽을 없앴으며 동구에 자주권을 부여해 새로운 데탕트무드를 조성해왔다.
그러나 소련 국내경제는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시련을 겪었다. 소비물자의 부족,비등하는 인플레와 실업자와 수도 절정에 달했다. 이같은 경제파탄은 소련 시민의 불신을 불러일으켰고,고르바초프의 지도력을 의심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대미정책에 있어서도 냉전체제를 해체시키고 미국과의 우호관계와 전략무기 제한협정,바르샤바 조약의 와해는 소련군부와 보수세력의 기득권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는 마치 흐루시초프가 1962년 가을에 쿠바 미사일 위기를 슬기롭게 다루지 못한끝에 브레즈네프일파에 의해 축출됐던 상황과 똑같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19일 새로 집권한 보수파 세력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보리스·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옐친을 고르바초프보다도 좀더 급진적인 개혁파다. 공산당 통치를 반대하고 소연방의 중앙집권 체제를 와해시켜 각 공화국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려하고 있다.
개혁파 옐친을 지지하고 보수파에 대하여 경제원조를 단절시킨다는 선언은 곧 강경파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그것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을때 레닌이 주도하는 공산당 일파를 반대하고 백계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을 파병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소련 국내전에 깊숙히 관여하다가 실패한 미국은 결국 소련과의 적대관계를 16년동안 유지한 이후 1933년에야 비로소 수교했다.
미국이 지지하는 개혁파가 실패하고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오랫동안 지속하였을때 미소간의 긴장은 고조되고 새로운 국제질서,즉 미소대결은 불가피한 것이다.
현 단계에서 미국이 소련의 국내정치에 개입한다는 것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미국도 인식하고 있다.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도 현 단계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1989년 5월 고르바초프는 북경을 방문,3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중소간의 화해를 이루었으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는 오히려 심화된 상태였다. 중국은 사회주의의 4개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선택한 반면에 고르바초프는 정치개혁도 과감히 실시해 「인도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을 추구했다.
소련과 중국에서는 개방과 개혁정책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으며 중소간에는 국가이익과 차이점도 많았다. 소련 보수파의 집권이 확실하고 장기화된다고 가정한다면 소련과 중국 사이에는 사회주의 이념의 재정립 또는 대외정책의 공동모색 등 새로운 협조관계로의 발전도 배제할 수는 없다.
8·19 쿠데타는 1970년대에 전개되었던 미·중·소 사이의 「전략 삼각관계」로 환원될 가능성도 시사해준다.
그런 경우 소련의 신집권 세력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며 미소간의 긴장이 조장되었을때 중국은 어부지리로써 미소간의 중재역할을 할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1970년대에 전개되었던 전략 삼각관계를 또다시 부활하게 된다.
한국의 북방정책은 한소수교라는 성공적 열매를 맺었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함으로써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통일을 위한 고위급 회담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강경보수파가 집권한 소련이 개방과 개혁정책을 지속시킨다고 가정해도 북한에 대한 소련 정책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파는 고르바초프 시대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며 북한이 고수하고 있는 사회주의 노선을 오히려 지지할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하면 북방 삼각관계측 소련·북한·중국관계가 좀더 강화될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또 남방 삼각관계측 미국·한국·일본관계도 좀더 긴밀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새로 전개되는 전략삼각 관계속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좀더 상승할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는 강대국의 각축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통일도 좀더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서울대 초빙교수·국제정치>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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