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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 전 안기부장(한국일보 월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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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 전 안기부장(한국일보 월요포럼)

입력
1991.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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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생활 4년만에 본사 이성준 정치부장과 첫 인터뷰/“5·6공 문제 「노­전」 직접 풀어야”/5공 신당설은 추측… 보다 큰틀 생각/「4·13」 「6·29」,평화정권교체 위한 과정5공의 핵심인물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7일 하오 자택에서 이성준 한국일보 정치부장과 만나 최근 관심사인 5·6공 문제,신당설 등에 관해 입장을 밝혔다.

장전안기부장이 87년 6월 야인으로 돌아간뒤 언론과 정식 인터뷰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인터뷰는 3시간30분간 진행됐으며 장전부장은 청와대와 연희동간의 현안,자신의 향후거취,과거문제에 이르기까지 정돈된 입장을 비교적 소상히 털어놓았다.

­최근 여권내에서 5·6공의 화해문제,특히 이를 위한 「노­전회동」 추진움직임이 눈에 띄는데 그 배경은 무엇이며 연희동측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먼저 5공이란 물이 있었기에 6공이란 배가 떴음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역사는 결코 단절될 수 없는 것인만큼 잘잘못은 가린다해도 6공이 5공을 청산대상으로 삼은 것은 역사 이음새를 잘못 처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화해 또는 화합이란 말이 나오는 배경도 이런 관점에서 새겨봐야 겠지요』

○깊은 약속·기약 있을것

­정치권에서는 연희동측이 「노­전회동」 성사의 전제조건으로 인위적인 5·6공 단절정책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절차·과정적 측면에서 그런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본질적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정권이양기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두분만의 깊숙한 인간적 약속과 역사에 대한 기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화합이 필요하다면 화합에 장애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첫수순이지 화합자체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제가 얘기할 바는 아니나 전·현직 대통령으로서 경륜을 지닌 두분은 역사의 기록이나 자서전 등에 무엇이 남겨져야할지 너무나 잘 알고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떠난 애정과 지키는 정열이 함께할때 국력의 두께도 더욱 두터워지리라고 확신합니다』

­5공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감안할때 6공이 5공 단절론을 펴지않고도 출범초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에서 정상적 정국운영을 할수있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5공 대목은 특정시기의 문제라기 보다 헌정이후 누적된 시련과 갈등이 표출됐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이든 지도자는 역사를 지키고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과거의 갈등을 모두 함께 책임지고 안고간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모들 접촉은 무의미

­그런 관점에서 노­전 회동의 장애요인이 구체적으로 뭐라고 보시는지. 두사람중 누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까.

『두분관계는 격식이 필요없으며 법 또는 규범을 초월한 것인만큼 노­전 회동이란 말도 적합치 않습니다.

더구나 주변에서 이러쿵 저러쿵 할일이 아니지요. 두분은 언제 어느장소든 만날 수 있으며 그럴수 있는 여건과 상황도 돼있습니다. 다만 두분간의 인간관계상 선후를 가릴순 없으나 전전대통령이 5공단절 등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현직대통령이 현재 역사적 책임을 지고있음을 감안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도출될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노­전회동이 언제쯤 가능하리라고 봅니까. 그리고 이를위한 양측의 의견교환은 어느 정도인지.

『두분의 노력에 의해 언제든지 가능하나 인간적 관계에 회복이 선행돼야할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이에관한 참모들끼리의 접촉은 있었으나 역시 모든 문제는 두분이 직접 얘기해야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최근 정가에 떠돌고 있는 이른바 「5공 신당설」 등 새로운 정치세력화 움직임과 관련해 장부장의 역할과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정치계절에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수한 추측들이 설왕설래되는게 어찌보면 자연스런 현상일것 입니다. 다만 저로서는 소위 「5공 신당설」이란 문제에 대해 직접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사를 밝힌적이 없습니다.

지나온 우리의 정치사가 정변과 돌출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망보다는 현상에 몰입되는 경향이 있어온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집권당내의 권력갈등이 어떻게 되느냐,또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가 어떻게 변하느냐 등의 문제를 넘어 보다 큰틀을 생각해야 할때가 됐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새롭게 구상 또는 계획하고 있는 복안이 있습니까.

『오늘의 과제는 「정치우위의 사회」라는 우리의 특성이 안고있는 현실적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상을 확립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해방후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결산하고,2천년대를 대비하는 도약의 기틀까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풍요와 정의,그리고 통일을 지향하며 끈질긴 생명력과 진취적사고를 바탕으로한 2천년대를 책임질 수 있는 「창조적 정당」이 필요합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역사적 갈망과 시대적요구로 대두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 정당」의 노선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창조적 정당」의 노선은 제한된 것이 아니며 기존의 틀이나 사고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보수니 진보니,극우니 극좌니의 2분법적 이데올로기 구분도 이제는 바람직하질 않습니다. 신국제질서가 도래하고 통일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정치적인 철학과 이념도 새롭게 정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정치상황에 대해 국민들은 체념과 탈진상태를 지나 차라리 냉소적 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창조적 정당의 출현은 기대가 아닌 필연이며 시대의 욕구에 부응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신당의 추진주체나 참여범위,구성시기 등은 어떻게 됩니까.

『과거 정치를 했던사람,또는 현재 정치를 하고있는 사람들을 포함,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망라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것은 의식과 사고의 전환이며 이념적 노선과 철학이 어떤 형태로 결집되느냐가 관건이지요. 그런만큼 구성시기 등은 큰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구성시기 큰문제 안돼

­자신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새로운 정당의 출현에 대해 의미부여와 의견개진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직접 어떤것을 해보겠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나라나 정치결집체가 개인의 것이 아닌만큼 어떤 형태든지 함께 뜻을 같이할때 의미가 있는것이지 혼자서는 의미가 없는것 아닙니까. 그런 관점에서 참여를 배제하진 않겠습니다』

­「창조적 정당」이 내년 14대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전제하에서 구상되고 추진될 것입니까.

『그렇게돼야 되겠죠』

­6·29선언의 배경·과정·성격 등과 관련,당시 여권핵심부에 몸담았던 일부에서 여러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문제는 전전대통령의 최대 관심이 건국이래 한번도 경험하지못한 평화적 정권교체와 단임 실현의 선례를 남기는데 있었다는 관점에서 보면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치·선언 등 여러사정과 긍·부정의 상황이 전개되긴 했으나 모두가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표출된 한 점이었다고 보면 될것입니다』

­4·13 호헌조치의 경우만해도 6·29의 극적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것이었다든지 또는 정세오판의 결과였다는 등 여전히 해석이 구구한데.

『무엇보다 정쟁으로 정권교체 일정이 잘못되는 상황은 피한다는게 문제의 핵심이었지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86년 개헌문제를 둘러싼 여야협의과정에서 여권은 내각책임제는 물론 대통령 직선제 방안까지를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정쟁의 소용돌이가 계속,상황극복과 단임시간표 이행을 위해 어떤 결론이라도 내려야할 입장이 된것이지요. 4·13이나 6·29 모두 그런 맥락에서 접근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6·29선언을 사전에 알았습니까.

『물론 알았지요. 어쨌든 당시 여권내에서 여러 얘기가 오갔지만 결국은 직선제가 채택돼 국민심판을 받아 6공정권이 창출됐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때 「내가 입을 열면 모두가 다친다」는 말로 세인의 시선을 모았는데.

『경호·정보책임자로 있으면서 업무관계 등으로 지득한 사항이 많은 나에게 이것저것을 자꾸 물으면 부담이 된다는 의미에서 한말이 그렇게 전달된것 같습니다』

­5공 청문회때와 검찰수사 과정에서 느꼈겠지만 5공비리가 청산돼야할 역사적 유물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헌정사 이후의 갈등과 시련이 5공에서 압축돼 분출됐다는 시각에서 봐야합니다. 문제는 여러 긍·부정적 요소를 어떻게 소화해내느냐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의 잘잘못은 역사발전의 거울이 되는것이지 청산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꽃받침은 열매 못맺어

­5공이 청산대상으로 지목되는 출발점은 역시 광주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보지않습니까.

『80년 상황이 유감스럽고 불행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 이의 치유를 위한 정상적과정을 거치지 못한것도 큰 아픔입니다.

10·26후 정치 사회적 욕구가 동시분출,질서의 회복과정에서 광주문제를 비롯,정치권 등이 불이익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이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것도 치유의 한 과정이라고 볼수있겠지요』

­5공후반에 후계자를 얘기할때 장부장도 이 반열에 포함되지 않았습니까.

『소위 「포스트전」 문제는 항간의 얘기일뿐이고 나의 「꽃받침론」을 들은 사람은 이를 잘 알것 입니다. 나는 이렇게 얘기했었지요.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도 꽃받침은 열매가 되지 않는다」라고…』

­우리사회의 지역감정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있는데.

『지역감정은 이미 한라산과 백두산을 깎아 메워도 채워지지 못할만큼 깊은 골이 패었습니다. 지역감정의 치유는 구호나 선언만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어떤 상황도 야기시켜서는 안됩니다』

­현재 쟁점화된 5·6공 화해문제가 잘풀리면 신당구상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는지요.

『두가지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문제는 5공 또는 6공식으로 편을 가르는 시각인데 모두가 같은시대를 살아왔다면 이젠 그같은 단선적 구분보다 분명한 노선과 철학에 따른 정치세력의 형성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정가에선 세대교체론이 한때 논란을 빚었는데 창조적 정당의 출범을 필연시하는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보는지요.

『특정개인의 독주가 비민주적이라면 누구를 미리 배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크고작은 경쟁속에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되는것이지 인위적인 것은 피해야 합니다』<이유식·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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