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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출의 꿈의 종착역에 서서/박완서 소설가(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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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출의 꿈의 종착역에 서서/박완서 소설가(목요진단)

입력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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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로 접어들면서 방학때 귀향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매표구 앞에서도 개찰구 앞에서도 길고 긴 줄을 서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같은 경의선이어서인지 내가 선줄 옆줄은 늘 봉천가는 줄이었다. 중국의 동북지방 심양을 그때는 봉천이라고 불렀다.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일 때여서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었다. 봉천가는 줄은 특히 더했다. 워낙 장거리가 큰 가족 트렁크를 든사람도 있었고,등에 진때 묻은 무명 봇짐에 바가지까지 주렁주렁 매단 사람도 있었다.아이들은 또 왜 그렇게 많던지. 『호오텐,호오텐 유키』하는 구내 방송이 들리면 나는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몇발자국만 움직여 봉천행 줄로 끼어들면 머나 먼 고장으로 떠날 수가 있다. 한참 가출을 꿈꿀 나이였다. 그리고 봉천은 내가 꿈꿀 수 있는 먼 고장의 한계였다. 가도 가도 끝없을 것 같은 압록강 건너의 머나먼 고장으로 갈수 있는 방법이 바로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어린 마음에 짜릿한 갈등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던가,너도 나도 백두산 구경을 떠나는 중국 붐에 별 생각 없이 편승해 나도 얼마전 중국 땅을 밟아봤다.

마침내 심양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근 오십년만이었다. 나는 당연히 늙어 있었다.

그리고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세상에 여길 오자고 오십년을 별렀다니,그리고 돌긴 또 얼마나 돌았던가. 나는 홍콩에서 북경 북경에서 연길,연길에서 마침내 심양에 이르른 미련하디 미련한 우회의 여정을 돌이켜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남은 여정은 또 얼마나 미련한가. 신의주를 한번 바라보기 위해 국경도시 단동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어떤 바보도 감히 생각해낼수 없을 것 같은,어리석기 짝이없는 우회길이었다.

심양역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지은 모집 그대로라고 했다. 과연 서울역과 모습도 느낌도 흡사했다. 역전 광장에서 바라보이는 건물들도 어딘지 식민지풍 이었다. 그 역만으로는 폭주하는 여객을 감당못해 딴 곳에 새 역사가 있다는 것도 우리 사정과 비슷했다. 조금이라도 먹고 살기가 나을까해서 숨 막히는 좁은 땅덩어리를 벗아니 봤댔자 역시 식민지에 이르렀을 그 옛날의 봉천행 동포들도 이 역사를 통해 낯선 땅으로 빠져 나갔겠구나. 나는 내 어린 날의 가출의 꿈의 종착역이기도 한 심양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동안 너무 늙었나 다. 감동 같은건 일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한없이 흘러 나오고,흘러 들어가고,서성이고,머무는 가운데 우리 일행도 어디에서 좀 쉬고 싶어도 엉덩이 붙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기차 시간을 놓쳤기 때문에 앞으로 세시간은 더 그러고 있어야할 형편이었다. 심양을 해방시키기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련군의 기념탑 앞에 땅바닥을 비집고 주저앉을 수가 있었다. 뙤약볕이 사정없이 정수리에 내려 꽂혔다. 이 땅 어디엔가서는 홍수로 수천명이 죽었다지만 워낙 큰 땅덩어리라 벌써 십여일째 이 땅을 전전하면서 아직 비를 맞아보지 못했다.

기차를 타고 열 몇시간씩 평야만 달려도 겨우 성하나를 벗어난 걸 알았을 때는 이 땅의 광대함에 질리겠더니만 도시에서는 또 너무 많은 사람에 치여 숨이 막힐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잘도 먹었다. 식당도 많고 먹을 걸파는 노점도 많거니와 길바닥을 어디에서고 사람들은 잘도 먹었다.

먹을것이 싸고 풍부했다. 어디를 가나 십억이 넘는 인구가 먹을것 걱정으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됐다는 걸 크게 자랑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벽촌에 들어가 본 현실도 정말 그러하였다. 나는 여독에도 지쳐 있었지만 기름지고 풍부한 음식에도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내옆 땅바닥에 앉은 일가족인듯 싶은 일행이 수박을 주먹으로 깨뜨려 나눠갖고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유쾌하고 행복해 보이는 일가족 이었다.

문득 식민지 시대의 서울역,봉천행 긴줄에서 기다림에 지쳐 보채는 아이를 위해 그 애 엄마가 먹이던 조밥 생각이 났다. 엄마는 작은 베보자기를 끌렀고 그 안엔 노란 조밥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주먹으로 그 밥을 뭉치려 했지만 입쌀이 하나도 안섞인 순전한 조밥은 뭉쳐지지 않았다.

답답해진 아이는 조밥속으로 코와 입을 박았다. 요새 아이들은 알기나 알까? 조밥의 그 슬프디 슬픈 노란 빛깔을. 그 아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었건 이 밥은 설컷 먹으며 살고 있겠지,

나는 시방 여기 뭐하러 왔지? 해방되고 오십년 가까이 온갖 우여곡절 끝에 일없이 괜히 해외여행을 할수 있게 된 자랑스러운 한국인은,같은 기간동안 12억 인구를 고루 잘 먹이는 일을 이룩한 위대한 땅에서 고작 이런 딱한 생각밖에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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