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별 41년… 강대용씨 LA서 통한의 상봉【LA지사=김성환기자】 『어머니! 살아생전에 찾아 뵙지못한 불효자식을 용서…』
생이별 41년만에 어머니의 주검앞을 찾아온 북한의 강대용씨(61)는 영전에 엎드려 통곡했다.
12일 하오5시30분(LA 현지시간) 6·25때 행방불명된 장남 대용씨가 북한에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재회의 꿈을 이루지 못한채 지난 1일 숨진 이행옥 할머니(81·한국일보 8월10일자 23면 보도)의 빈소가 차려진 LA 한국장의사는 한동안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어머니의 영전에 꽃다발을 바친 대용씨는 자리를 함께한 남동생 대양·대인씨 및 여동생 영자·행자·점숙씨 등 친동생들과 별리의 세월동안에 쌓인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대용씨는 이날 하오3시30분 미국정부의 비자발급으로 북한 해외동포 원호위원회 로철수 참사(51),중국 북경으로까지 마중나간 조카 강형원씨(LA타임스 기자)와 함께 북한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았다.
80여명의 내외신기자가 취재를 하는 가운데 LA공항에 도착한 대용씨는 동생들과 감격의 재회를 했다.
회색양복에 중절모를 쓴 대용씨는 보도진에게 『이렇게 나와줘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족들과 함께 곧장 빈소를 찾았다.
대용씨는 고교생이던 지난 50년 6·25전쟁당시 가족과 헤어졌다가 45년만에 LA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이루어졌으나 아들이 생존해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쓰러진 어머니 이씨가 비자발급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숨져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미국에 온 것이다.
이씨의 장례식은 15일 정오에 열리며 한국 전통장례의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한편 강씨와 함께 미국에 온 로철수 참사는 『머니않아 제2,제3의 강씨가 나올것』이라며 『이번 강씨의 역사적인 방미를 계기로 조미간의 민간교류가 본격화 될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북한에서 방직총국재정 처장이라는 고위급 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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