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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패배주의/송태권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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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패배주의/송태권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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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화젯거리가 있었다.등장인물과 소재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담고있는 의미심장함,특히 한국경제의 현실을 꼬집는 시사성 때문에 그저 한때의 얘깃거리로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 화제를 꺼내는 재계사람들도 이야기 말미에는 항상 씁쓸한 여백을 남겨두곤 했다. 화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내정상급 재벌총수인 모회장은 지난 초여름 일본을 방문했다. 거기서 일본 유수의 전자 메이커를 시찰했는데 회장 자신이 생산공정,조립현장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설명을 들으면서 아연실색 할수밖에 없었다.

거의 상상을 초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 일견 한국제품과 대동소이해 보이는 VTR를 만드는데 이 회사는 한국회사들에 비해 부품가짓수를 무려 30%나 줄여쓰고 있는 것이었다.

공장자동화,고품질 등은 제쳐놓더라도 부품가짓수를 그토록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 기가찰 노릇이었다. 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가전회사가 한국에서 제일이고 세계적으로도 크게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던 우물안 개구리식의 사고에 낯이 뜨거워졌고 더나아가 한­일 경제력,기술력의 격차를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했다. 이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들여 『일본것을 능가하는 제품을 하나라도 만들어내라』고 닦달했다는 얘기다.

이 회사간부들은 그래서 초비상에 들어갔으나 정작 속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표정들이다. 스스로 설정한 「한계」에 구속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회장이 저토록 독려를 하지만 사실 일본의 기술력을 앞서기는 커녕 더이상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쫓아가는 것만해도 다행』이라고 넋두리를 했다.

이같은 하소연에 어느정도 수긍이 안가는것도 아니었지만 국내 최고의 재벌회사 간부가 이런생각에 젖어있다면 다른 기업들은 더말할 나위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요즘 재계에서는 『일본은 도저히 추격할 수 없다』는 일본 영구우위론이 팽배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 한국경제가 한창 기세를 올릴때와는 영 딴판이다. 반면 일본은 대한경계론이 한때의 「착오」였다는 듯이 한국경제를 요리조리 갖고 노는듯한 자신감에 차있다. 8·15광복절을 앞두고 경제인들의 패배주의를 느낄수밖에 없는 기자의 소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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