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포츠담 산수치궁으로/콜 총리 참석준비에 “「군국」 부활”/프러시아 군사대국으로 키운 인물/2차대전땐 5차례나 옮겨지기도【베를린=강병태특파원】 군국주의 프러시아의 상징인 프리드리히 2세대왕의 유해를 프러시아의 본거지인 베를린근교 포츠담으로 재이장하는 행사를 둘러싸고 또 다시 「프러시아 전통부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차대전을 거치며 나치독일과 미국 등에 의해 5차례나 이장되는 파란을 겪은 이 유해는 오는 16일 서독남부의 한 성으로부터 원래의 안식처인 포츠담 산수치궁으로 되돌아 온다. 바로 이 이장행사에 콜독일총리가 참석하고,군의장대가 동원되는 「성대한」의식이 준비되고 있어 『단절된 독일역사와 프러시아를 재결합하려는 의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1740∼1786)은 이번에 함께 유해가 이장되는 부왕 프리드리히·빌헬름1세와 더불어 17세기말∼18세기 중반 독일의 수많은 공국중 하나이던 브란덴부르크공국을 부국강병책을 통해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절대주의시대의 대표적 계몽군주이다.
프리드리히대왕은 특히 브란덴부르크공국의 후신 프러시아를 당시 이 지역의 패전국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와 겨누는 군사대국으로 키운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상징.
2차대전전 프리드리히대왕의 유해는 산수치궁에,「군인왕」으로 불리는 부왕의 유해는 인근 프러시아 군부대자리의 군교회에 묻혀 있었다.
나치독일은 1943년 전쟁이 격화되자 이 유해들을 공군최고사령부 지하벙커로 소개했다가 포츠담 야생공원에 묻었고 45년3월 다시 베른트로데의 칼륨광산지하 5백60m 깊숙한 곳에 옮겼다.
종전후 점령국 미국은 프러시아 군국주의 유물제거 의도로 이 유해들을 베를린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서부 마부르크의 엘리자베드교회로 옮겨다 묻어 버렸다.
그후 52년 미국과 아데나워 정부는 프러시아 호헨졸레른 왕가의 마지막 상속자인 루이스·페르디난트왕자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유해들을 호헨졸레른왕가의 발상지인 독일남부 헤친겐의 왕실소유 성으로 이장토록 허락했다. 이때 미국과 서독정부는 일반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안개낀 야밤에 은밀히 이장을 끝내라는 조건을 붙였었다.
미국과 서독정부와는 달리 동독정권은 「군국주의배척」이념에도 불구하고 프러시아 전통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동독은 전후 파괴된 산수치궁을 원상대로 복원했으며,프리드리히대왕의 기마상을 동베를린의 중심 운터 덴 린덴거리 한복판에 다시 세웠다.
통일직후인 지난해 말 포츠담을 관할하는 브란덴부르크주와 호헨졸레른 왕실은 유해를 주당국의 주관으로 이장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이장이 임박한 최근 이장의식절차 등이 공개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우선 문제가 된 것은 콜총리가 왕실과의 친분을 내세워 산수치궁에서 진행될 추도식에 참석하고 이장현장에 입회한다는 점. 총리실측은 극구 「개인자격」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콜총리가 참석하면 자연 「국가적의식」 성격을 띨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에 의식자체가 프러시아제국의 장엄하고 화려한 전통의식을 그대로 재현하는데다,특히 연방군 의장대가 동원될 예정이어서 논란의 초점이 되고있다.
유해들은 오는 16일 헤친겐성에서 군의장대에 의해 운구돼 과거 독일제국황제의 호화전용 열차편으로 포츠담으로 향한다.
저녁7시 출발하는 이 열차는 『낡아서 점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백㎞마다 정거할 예정이어서 밤이지만 독일 남서쪽 끝에서 북동부끝에 이르는 동안 적지않게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인 17일 아침 포츠담을 30㎞ 앞둔 브란덴부르크시에 당도하면 디젤기관차를 프러시아시대의 증기기관차로 바꿔 달고 상오10시께 포츠담역에 도착할 예정. 이어 정오께 왕실과 콜총리 등 「친지」,문인 예술가 등 2백50명이 참석하는 추도식을 가진뒤 해가지면 산수치궁 프리덴스교회옆 묘역에 안장된다.
이같은 의식은 독일국민들에게는 전후 최초의 「제국행사」로 유별난 감회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과 야당 사민당 등은 『군국주의 프러시아역사에 독일을 다시 연결하는 것으로 외부세계에 비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 성직자는 『정치행사에 군을 동원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위헌심사를 법원에 청구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한 논쟁은 일반의 관심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고,결국 이 행사는 TV 등을 통해 국민적 「스펙터클」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콜총리정부는 동독의 우익성향 유권자들의 지지상승을 노리고 이같은 복고적행사를 유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많은 논란을 무릅쓰고 「장관」을 연출하는 이면에는 패전으로 인해 박탈당했던 국가적 전통과 자부심을 되찾으려는 통일독일의 의지와 자신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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