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지금껏 한번도 아버지라고 불러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얼굴도 알턱이 없지요. 생후 4개월만에 일본군에 끌려가신 어른이 언제 돌아 가셨는지도 모르니까요…』지난 3일 동경 지요다(천대전) 구 공회당의 맨 앞자리에 앉았던 소복차림의 김덕순씨(48·서울)는 기자의 질문에 몇마디 대답하다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곤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전후보상국제포럼」이란 행사가 있다는 말을듣고 어렵사리 노자를 마련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 70여명과 함께 동경에온 김씨. 당장 보상을 받아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아버지를 빼앗아간 나라에 와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비행기값이 아깝지도 않다고 했다.
혈혈단신인 김씨는 지금도 호적상 큰아버지의 딸로 등재돼있다.
출생신고도 못한 상태에서 일본해군에 징병당한 아버지는 1943년 5월 마리아나란 남양군도의 한 섬에서 전사했고 어머니도 해방후 간난의 생을 일찍 마감한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제사한번 올리지못한 한을 어떻게 말로 다하겠느냐고 울먹이는 김씨의 하소연을 다들어줄 시간은 없었지만 우리는 다 짐작할 수 있다. 그들보다 더 억울하고 원통한 피해자가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그것은 일본정부만이 알고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8월의 일본에는 반세기전의 태평양전쟁과 관련한 갖가지 목소리들이 메아리친다.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정국) 신사공식 참배논쟁,히로시마(광도)를 중심으로한 반전·반핵운동의 확성기소리,시베리아억류 일본군의 억울한 피해를 외치는 소리 등등.
이 큰목소리들속에 올해는 색다른 목소리가 끼여들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의 전쟁피해를 보상하라』는 이 소리는 가해자 일본의 책임을 묻는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합창이다.
당사국들과의 조약과 협정으로 전쟁보상문제는 다끝났다고 일본정부는 녹음기를 틀어놓은듯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50주년을 계기로 진정한 전후보상문제는 이제 겨우 제기된 단계일뿐임을 이번 행사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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