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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밑이 어둡다/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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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밑이 어둡다/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1.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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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제3의 체제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읽었을리가 없지만,갤브레이스라는 경제학자의 이름은 한국에서 꽤 널리 알려져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네,「풍요한 사회」 또는 「새로운 산업국가」네하는 책이름이 대중가요만큼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갤브레이스는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가 『서로 접근해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새로운 현실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그 어떤것』이 될것이라고 예언한다.

새뮤얼슨이라는 경제학자도 한국에서 꽤 알려진 이름이다. 그도 자본주의사회나 공산주의사회에서 모두 체제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우리시대」의 특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새뮤얼슨은 그러나 두 체제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시장기능에 의존』하게 될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세계는 이제 『멀고도 이루지 못할 꿈』을 공유하게 됐다고 진단한다. 『경제성장과 안전의 합당한 균형』이라는 꿈이다. 「안전」이란 쉽게 말해서 생활의 안정을 뜻한다.

동유럽공산권이 무너지고,그럼으로써 이데올로기의 대결이 빛을 잃으면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전망이 세계의 지성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갤브레이스와 새뮤얼슨도 그런 사람들중의 대표적인 지성인들이다.

아닌게 아니라 소련공산당이 중앙위에서 『공산주의의 실패』를 확인하는 새로운 강령안을 확정지음으로써 동유럽 공산주의운동은 「제도적으로」 종막을 고했다. 계급투쟁이념의 포기와 함께 소련공산당은 일종의 「국민정당」을 표방하고,공적소유와 사적소유가 공존하는 혼합경제체제,그리고 3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가 그 큰골자다.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라고 해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금강산에 몰려갈까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공식문서로 채택하고 소련 공산당중앙위 전체회의는 26일 끝났다. 그렇다면 소위 「주체사상」의 나라 북한은 어디로 갈것인가?

우연일진 몰라도 모스크바에서 당중앙위 전체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날 김일성은 『동유럽의 민주화를 인정한다』는 말과 함께,「불가침선언」과 「3통협정」을 맞바꾸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3통협정을 받아들이겠다면 통행·통신·통상의 길을 트겠다는 얘기가 된다. 또 잇대어서 청진에 「경제특구」를 만들테니 남한도 참여해달라고 요청해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쪽에서도 박철언 체육청소년부장관이 밝혔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연결해서 관광특구로 남북이 공공개발하는 교섭이 진행되고 있고,노태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때까지는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한쪽에서는 북한의 「변화」의 진의에 대해 의심과 경계를 풀지않고 있다. 하지만 동유럽공산권이 무너진 지금 북한이 살길은 국제사회에 끼어드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현실」을 북측이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안으로 통제의 고삐를 더욱 조이면서,밖으로는 미소와 개방의 몸짓을 보일 것이다. 통행·통신·통상의 문을 과연 말 그대로 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어느 정도의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아마도 관광특구의 이름아래 우리의 관광객들이 떼지어 금강산으로 몰려가는 사태가 미구에 닥칠 가능성도 커보인다. 김일성으로서는 울타리를 쳐놓은 특구안에서 노다지를 줍게 될것이다.

○주체노선과 GNP

남북문제는 현실성을 띨수록 또한 「정치성」도 짙어진다.

예를 들어 일부 젊은이들은 북의 소위 「주체노선」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체사상이란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이후,스탈린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구호일 뿐이다. 「주체」란 오직 한사람의 주체요,나머지 99% 이상의 백성들이 노예상태라면 무의미한 구호일 뿐이다. 또 중·소 이념대결이 빚은 소위 「북방 3각관계」이 역학관계에서만 가능한 외교노선이었다.

올들어 모스크바에서 나오는 증언들도 6·25전쟁은 스탈린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당시 코민포름을 앞세운 국제공산주의의 입장에서 「민족」이란 부르주아가 만들어낸 반동 이데올로기였으니까,그것이 김일성의 「민족통일전쟁」이었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는 잠꼬대일 뿐이다.

그런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우리측의 경제력의 우위를 깃발처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GNP의 숫자란,그것이 아무리 높다해도 분배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는 한 힘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슷한 얘기지만 서독이 동독을 돈으로 산것처럼,우리도 경제력으로 통일을 살수 있다고 믿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전에 「한건」 해야겠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체육부장관이 통일원을 제치고 금강산개발을 서두르는 것도 곤란하다.

문제는 「등잔밑」이다. 내부갈등을 해결하고,경제의 강화가 통일의 선결요건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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