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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와 자존/유영종(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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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와 자존/유영종(아침조망)

입력
199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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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을 다녀온 한 고위공직자가 현지에서 받은 초청장에 감명을 받았다. 외국인을 공식모임에 부르는 것이므로 으레 영어로 적혀 있을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보니 중국어 일색이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옮겨 적은 영어초청장은 따로 인쇄되어 동봉 형식으로 보내 왔다는 것이다.얼핏 사소한 일로 넘겨 버릴수 있다. 형식을 제대로 갖췄으므로 특이한 것은 없다. 단지 자국어를 앞세웠다는 사실이 마음을 크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 공직자가 감명스러웠던 것은 아마 중국과 중국인의 강한 「자존」일 것이다. 흔한 관례보다 나라 안에서는 자기를 존중하는 자신감이 돋보인다. 초대의 주역이 누구임을 당당하게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화의 뿌리는 깊다.

나라의 언어에 긍지에 갖고 있음은 프랑스인들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어를 곧 프랑스문화로 알고있다. 시인 폴·발레리의 말엔 자랑이 담겼다. 『프랑스어는 프랑스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지적산물이다. 프랑스의 위대한 문학작품과 철학은 따져보면 프랑스어에 포함된 무궁무진한 보물더미의 일부에 불과하다』 허장성세가 아닌 자부심의 표현이다. 잘산다고 으스대는 오만과는 다르다.

긍지를 잃고 자존을 무시하면 수치를 모른다. 뼈대없이 잘난체하는 꼴이 남의 비웃음을 사는줄을 알지 못한다. 긍지와 교만을 구별하지 못하면 자기 함정을 판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를 향한 안팎의 눈총은 따갑기만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따끔한 소리에 안에선 태평천하다.

해외관광이 소란을 떨고 다닌다. 귓전을 때리는 평판만 들어도 얼굴이 저절로 붉어진다. 동남아여행은 정력관광이고 멀리 구미로 향하면 사치성 싹쓸이가 일쑤다. 나라안의 혐오식품이 고갈된 탓인가,보신과 정력을 키우려 해외로 나간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뻔히 짐작이 간다.

그 대가로 얻어들인 평판이 민망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조숙조로하고 악착같이 일하려는 의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하 비평엔 한국을 적당히 깔아 뭉개려는 숨은 의도도 있을줄 안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서 우리의 소매치기가 해외원정에 나가서 극성을 떤다는 소식은 수치감을 자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국의 경찰이 「신기」에 가깝다고 경고하는 정도이니 부끄러운 기술에 또한번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가 없다.

자율과 개방이 뜻밖의 불길을 일으키자 정부가 손을 쓴다고 나섰다. 해외여행자에게 실시하는 소양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더니 사치여행을 특별단속한다는 것이다.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 항공편은 자리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되었다. 이 기간에 불법 탈법행위에 대해 탈세여부를 업격히 가려낸다는 것이다.

사치관광이 얼마나 수그러들지 두고 볼 일이지만,국내에서의 수치도 골칫거리임이 분명하다. 곰 쓸개를 빨아대는 정력가들에게 어떤 경종을 울려야 할지 막연하다. 보약이라면 위생쯤은 아랑곳않는 고집은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하긴 국회에서도 곰 쓸개로 왜 세상이 이처럼 떠들썩 하느냐는 희한한 개탄이 나왔으나 더할말이 없을것 같다.

소양교육의 강화와 탈세 등의 조사로 이 병폐는 고쳐지기 틀렸다. 환자가 아픈데를 모르면 명의도 환부를 찾아내기 어렵다. 여행자유화가 나쁜것이 아니다. 수입개방에 모든 책임을 돌려서도 안된다. 그것은 근거없는 핑계일 따름이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줏대가 서면 두려울것도 부끄러울것도 없다. 줏대가 무엇인가,긍지와 자존이다. 이것이 있으면 가난과 고난도 능히 이긴다. 우리는 가난을 알았기에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고난을 겪었기에 풍요로움의 값을 터득했다.

어려운 시절에 우리가 배운것은 나라와 겨레의 자랑이었다. 한글이 세계의 으뜸 가는 글로 알았다. 좁은 땅덩이긴하나 금수강산의 자랑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 것은 뼈대가 꺾인일이 없는 역사의 전통이었다. 비록 나라를 짓밟히고 뺏겼어도 굴복은 하지 않았음을 자랑으로 삼았다.

지금은 이 놀라운 긍지가 교과서에서 멈추고 있다. 성장을 이룩한 대신 이 자존을 잃은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자존은 스스로 높임이다. 남이나 밖에서 무슨 소리를 한들 자기를 지키면 두려울게 없다. 조숙했다고 꼭 조로한다는 법은 없다. 의욕이 살아나면 체면을 잃지 않는다.

과도기나 전환기의 혼란이라는 변명도 이제 졸업할 때가 되었다. 긍지를 살리고 자존을 높여야 성장의 보람을 찾게된다. 소양교육과 특별단속 그리고 세무조사의 위협이 효험을 발생하는 한 긍지와 자존은 발 붙일데가 없다.

긍지는 기를 살린다. 자존은 수치를 알게 한다. 우리가 염원하는 자율과 민주는 바로 이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닐까. 나라의 말에 긍지를 담는다면 국민의 마음에 자존을 심어가야 선진도약의 꿈이 싹튼다.

선진의 바탕은 풍요보다 자기 확립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기를 존중할줄 알아야 남도 알아주기 때문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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