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묘한 흐름이 어쩌다 대중가요에 실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요즘 하이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피에로는 우릴보고 웃지」라는 노래도 젊은이들이 그 제목이 지닌 뜻밖의 풍자성을 의식하든 않든 아랑곳 없이 마냥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지난 2월 필자는 수서사건이 터져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을때 본란에 「수서 희극의 피에로들」이라는 글을 썼었다. 한국판 특유의 부패학을 연출한 그 사건이 희극이자 한없는 비극으로 비춰졌고,어쩌면 들러리나 서다 쇠고랑을 찬것같은 그 피의자들이 어릿광대나 「피에로」들처럼도 보였던 탓이었다.
불과 5개월을 넘긴 지금 그 「피에로」들의 대부분이 교도소를 나와 더러는 손에 V자마저 그리며 우릴 보고 웃고 있다. 실제 희극이나 팬터마임에서 마음놓고 웃어야 하는건 분명 관객들의 양보할수 없는 몫인데,거꾸로 「피에로」들이 관객을 보고 웃고 있는 것이다. 왜 그들이 지금 무대마저 잊은채 방자하게 웃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떠들고 야단쳐봐야 『끄떡없다』는 자신감 때문일수도 있을 것이다. 온 세상에 흙탕물을 튀겼어도 불과 5개월쯤 쉬고 있다 가볍게 풀려났고,그럴수록 회사는 온전하고,「미운놈 떡하나 더주기」 정도가 아니라 1백67억원이라는 거금마저 추가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왜 아니 웃을 것인가. 그뿐이 아니다. 높은 자리의 머리좋은 분들이 파고가 높을때마다 고맙게도 앞다퉈 막아준다. 『기업주가 나쁘다고 기업까지 벌해야 되겠느냐. 기업 때문에 종업원들까지 어려움을 겪어서는 안된다』는 지당한 엄호사격이 또 때맞춰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보가 수서사건을 감히 저지르려 했던것도 그런 엄호사격을 믿고 서였다. 「집없는 주택조합원들에게 집마련 길을 열어주는게 뭐가 나쁜가」라는 안이한 명분과 로비에 그만 놀아나 특혜극을 앞다퉈 밀어주려 했던것이다. 주택조합이라는 몇그루 나무살리기 핑계가 사실은 국가적 대사인 주택행정이라는 거대한 숲을 결딴 내려는 기도로 드러났듯이,경제원칙상 일견 지당해보이는 기업·종업원 구제 명분에도 엄청난 구멍이 있는줄은 삼척동자도 쉽게 알수있다. 나쁜짓을 저질렀으면 의당 응분의 벌을 받게해야지 또 감싸주려고만해서는 이번엔 「사회정의」라는 나라의 근본마저 흔들리게 되는것이 아닌가.
감방문을 나서는 수뢰의원들도 하나같이 웃고들 있었다. 형평을 내세워 무언가 억울하다며 되레 거리낌이 없었고 송사가 대법원까지 가는동안 계속 금배지를 달고 다음 선거에서도 출마할 결심을 선거 구민들에게 V자를 펴보였던 것이다.
피에로란 바로 어릿광대이다. 희극에서 광대란 특유의 분장과 시침떼는듯한 자못 진지한 몸짓으로 괘사를 떨어 관객을 웃겨야 하는게 그 역할인데 거꾸로 그 광대가 관객을 보고 먼저 웃으니 관객들은 차라리 처참해 질수밖에 없다. 하지만 곰곰 살펴보면 광대가 객석 차지하고 관객이 무대로 몰리는 파천황의 사태가 어디 수서사건에서 뿐일까 생각되기도 한다.
최근 실시된 30여년만의 지자제 의원 선거가 중앙정치와 중앙관치의 놀이마당이 되어가는 사태를 과연 어찌보아야 하는 것인지도 따져볼 시점이다. 공천도 그랬고 의장선출마저 일사불란하게 각본대로 추진하려다 더러 콧등을 쏘이기도 했다만 이 역시 참민주정치의 저변 확산을 위해 조용히 객석에 앉아 있어야 할 중앙정치는 무대 가운데로 뛰어 오르고 무대에 서 있어야할 지방의원들은 객석에 비켜선 꼴이 태연히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방의회 기능 정착을 위한 토론회에서 어느 교수가 소개한 생생한 일화가 새삼 생각난다.
『지자제 실시로 한결 한가해지겠다』는 그 교수의 수인사를 받은 내무부 고위관료가 『웬걸요. 이제부터 도리어 할일이 많아져 바쁘게됐다』고 천연스레 동문서답하더라는 것이다. 오늘날 지방 행정업무의 3분의2가 넘는 분량이 중앙행정의 뒤차다꺼리인데,그것도 모자라 말로는 『풀뿌리 직접 행정」이라 하면서 사사건건 간섭할 궁리나 하고 있다는 힘없는 교수의 탄식깃든 술회였던 것이다.
어제 아침 신문에서는 내각제 잇단 거론에 나선 야당의 진의와 여당 중진들의 주말 골프회동 배경에 관한 기사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랬다 저랬다 해온 어느 총재의 다목적 「원모」가 어쩌구 저쩌구하고,「대세론 행보 견제효과」와 「재결속과시」라는 그럴듯한 회동풀이가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소위 「대권」이라는게 과연 있을수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국민들을 받들일은 제대로 않으면서 하고 한날 보일 레퍼터리가 정말 그것뿐일까 싶었다. 누구라도 싹수가 보이기라도 하면 어련히 표를 찍어줄것인데,저런 법석으로 번지수만 돌리고 있어서는 피에로가 관객을 보고 히죽히죽 웃는 꼴이 또 생겨나게될까 걱정스러워지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광대이면 광대,관객이면 관객이어야만 한다. 때도없이 주객을 전도해도,작은 일을 도모하려다 큰몫을 해처서도 결단코 안된다.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나는 그런 웃음 싫어…』라는 어줍잖은 한 대중가요의 제목과 가사속에 그런 서릿발 경고와 주의보가 깃들수도 있음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더이상 「피에로가 우릴보고 웃지」가 아니라 「우리가 피에로를 보고 웃지」로 노래 제목이 바뀌어야 하겠다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조용한 아침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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