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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로의 친일고백(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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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로의 친일고백(사설)

입력
199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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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제의 앞잡이였다」 광복절 46돌을 한달쯤 앞두고 친일의 과오를 참회하는 양심의 고백을 새로이 듣는다. 친일은 이미 과거에 속하나 청산과 단죄는 지금까지 미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끈질긴 고발과 추적에도 불구하고 친일세력은 구차한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궁지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오히려 권좌와 부귀의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벌여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친일청산의 미결은 나라의 정통성과 도덕성을 훼손하고 민족의 긍지에 흠집까지 남겨놓았다. 그들의 득세는 결과적으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을 거듭 응달로 밀어버려 서럽고 한많은 세월을 살아가게 했으며 사회정의와 역사의 왜곡을 초래하였다.

반세기만의 참회는 대학총장을 역임한 법학계의 원로이자 학술원 회원인 이항녕 박사가 강연을 통해 옛 잘못을 실토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그는 일제때 군수를 지낸 경남 하동에서 「출세와 보신을 위해 공출을 받아내려고 죽창 위협을 방관했다」고 털어놓으며 사죄를 구했다. 강연의 주제가 「도덕성 회복의 길」이었다니 고백의 뜻이 돋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과거의 파행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정부수립 이후에 반민특위가 구성되어 준엄한 역사심판이 내려지리라던 기대가 친일세력의 발호와 방해로 끝내 흐지부지되고 그 상처가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친일청산의 요구가 거듭되었으나 아무런 결론과 매듭을 보지 못했다. 일제의 압제와 수탈의 앞잡이로,또는 학병과 정신대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죽음과 치욕의 전장으로 몰아붙인 당사자들이 해방과 더불어 일시에 변신해 마치 독립투사인양 가면을 쓰고 둔갑해서 영화를 계속 독점하는 파렴치함을 드러냈다.

우리가 친일의 청산을 바라는 까닭은 단순한 보복감정 때문이 아니다. 역사의 굴절을 바로잡고 민족의 정기를 일으켜 세움이며,나라의 정의를 확립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존을 굳히고,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한다고 의지를 천하에 밝혀두려는 것이다.

먼저 참회가 있어야 용서가 따른다. 이박사의 고백에 「약관의 이군수」를 기억하는 촌로들이 관용의 반응을 보였음은 새겨둘만 하다. 과거는 묻어둔다고 오래 망각되지 않는다.

심판의 기회는 언제이든 닥쳐오게 마련이며 이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확신한다. 현실의 역리는 이 순리앞에 반드시 굴복하고 만다. 세월의 흐름으로 물리적 단죄는 불가능하다 해도 정신적 청산은 기필코 달성되어야 함을 깊이 깨달아야 할것이다.

친일의 청산과 정리는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진심의 고백과 객관적 추적이 병행되어 식민시대의 수모와 분노를 밝혀내서 민족사의 계율을 바로 잡는 엄숙한 책무가 우리와 우리시대에 맡겨져 있음을 명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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