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도 의혹규명 활동재개/시체 4구 일렬횡대 묻혀/오대양 자수수사【대전=임시취재반】 피살·병사후 암매장된 오대양 전 직원 4명의 시체발굴 현장에서는 경찰이 집단변사 2년전부터 자행돼온 린치살인을 철저하게 조사했더라면 32명 떼죽음의 참극을 막을수 있었을 것이라는 유족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높았다.
시민들은 4년만에 다시 부각된 오대양 사건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이번만은 의혹이 전혀 남지않게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시체발굴◁
충남도경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11일 대전 동구 하소동 오대양의 농장창고가 있던 무밭에서 시체발굴을 시작,하오4시30분께까지 4구를 모두 찾아냈다.
경찰은 대전지검 송해회 검사의 지휘와 충남대 의대 병리학교실 송규상 교수 입회아래 하오1시50분께부터 소형 포클레인을 동원,3백㎡가량의 무밭을 파내려간 끝에 하오2시40분께 조재선씨(86년 당시 28세·여·육아원보모)로 보이는 시체를 찾아낸데 이어 황숙자씨(85년 당시 37세·여·기숙사 식모),암으로 숨진 이세윤씨의 부인 박형심씨(87년 당시 41세)로 보이는 시체를 찾아냈다.
하오4시30분께는 총무과장 노순호씨로 보이는 시체를 마지막으로 발굴해냈다.
이들 시체는 1.2∼1.5m 깊이에 2∼4m 간격으로 자로잰듯 일렬횡대로 묻혀 있었고 오른쪽부터 숨진 순서대로 황,조,박,노씨 순이었다.
이들중 조,박씨로 보이는 시체는 완전히 부패해 뼈만 남은 상태였으며 황씨는 논물이 스며들어 덜부패됐고 노씨는 마대로 싸이고 비닐끈으로 묶인뒤 박스안에 들어있어 가장 상태가 양호했다.
발굴작업은 유족들이 『우리식구 살려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현장에 뛰어드는 바람에 한때 중단됐는데 조씨의 아버지 조경환씨(64)는 『딸의 연락이 끊겨 실종신고한뒤 경찰과 함께 이곳까지 왔었다』며 『경찰이 그때 농장을 급습했더라면 최소한 32명은 살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수한 김도현씨 등은 암장당시 박순자씨가 『오대양 땅에 묻히니 천국에 갈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채권단◁
1백92명에 이르는 (주)오대양의 채권단은 오대양 전 직원들의 자수를 계기로 집단변사 의혹규명 등 활동을 재개키로 했다.
채권단 대표 박종태씨(52·대전 유성구 지족동 293)는 11일 상오10시께 충남도경을 방문,『1백70여억원의 채권액을 돌려받기 이전에 32명의 변사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사실부터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채권단의 이같은 입장은 타살이 규명될 경우 재산을 빼돌린 제3의 배후세력을 파헤쳐 채권액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추가자수◁
11일 상오 경찰에 새로 자수한 오민철씨(34·전 오대양 생산과장)의 부인 심해련씨는 첫번째 살해·암장사건을 저지른 여직원 7명중 1명이다.
심씨는 『85년 2월 오대양에 경리사원으로 입사,85년 4월초 이복희씨 등 여직원 6명과 함께 박순자씨의 지시로 식모 황숙자씨를 공장내 가구전시실에서 하오8시께부터 6시간가량 손과 발로 집단구타해 숨지게 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또 『남편이 다른 사람이 범행을 폭로하기전에 자수해야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또 용인사건 당시 천장아래에서 이불끈 등을 박순자씨에게 올려줬던 찬모 김영자씨(44·여)와 정하진씨(46·여)도 이날 하오 자진출두했다.
◎배후협박 집중조사/자수한 7명 오늘중 영장신청
▷수사◁
경찰은 김씨 등의 범행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들의 여죄,자수동기,오대양 사건과의 관련여부 등을 추궁하는 한편 유해 4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감식의뢰키로 했다.
경찰은 특히 자수동기가 석연치않다고 보고 오대양 운영의 비밀을 알고있는 김씨 등이 누군가로부터 추적·협박 등을 당한끝에 자수를 결심했는지를 캐고 있다. 경찰은 이날 자수한 심해련씨(25·여)가 최근 남편 오민철씨(34·10일 자수)에게 전화가 자주 걸려왔으며 그때마다 오씨가 불안해 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 부분을 집중조사중이다.
경찰은 폭행치사·암매장에 관여한 박순자씨의 동생 용택씨(38·당시 전무·경기 안양시 호계동 경향아파트 13동403호)를 검거하기 위해 형사들을 보냈으나 잡지 못했다. 박용택씨는 누나와 함께 대부분의 사업을 집행해온 핵심인물로 황숙자씨 암장 등에 깊이 관련돼 있으며 집단변사직전 누나와 크게 다툰뒤 오대양을 떠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85년 4월 오대양공장 식모 황숙자씨 살해·암장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찾고있던 이복희(30) 인희씨(27) 자매는 이날 하오6시께 아버지 이상배씨(55·충남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 742)와 함께 충남도경에 자진출두,범행사실을 전면부인했다.
이복희씨는 『황씨 폭행당시 오대양 식당의 다른 방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고 말했으며 인희씨도 『황씨가 사장실에서 박순자씨에게 꾸지람을 듣는것을 보고 심부름을 나갔다 돌아와보니 황씨가 폭행당해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 자매는 『황씨가 회사 돈을 빼돌린데다 계율을 어기고 남자와 관계,임신중이어서 박순자씨의 지시를 받은 박씨 장남 영호씨(용인사건때 사망·당시 24세·오대양 전무) 등에게 폭행당해 숨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 자매의 아버지인 이상배씨는 87년 8월15일 오대양에 찾아가 빌려준 돈 4억4천만원을 갚을 것을 요구하다 집단폭행당한 사실을 경찰에 고소한 장본인으로 당시 자녀 1남6녀 모두 오대양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장녀 선희씨(당시 31세) 부부는 용인공장에서 희생됐다.
경찰은 발굴된 시체말고도 이같은 방법으로 살해·암매장된 사람들이 더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연고가 없는 오대양 전 직원들의 명단을 파악,생사여부를 다시 확인키로 했다.
경찰은 자수한 김도현씨 등 6명과 심씨를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12일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암장된 대전농장 열무밭으로/용인공장 플라스틱업체 입주
▷오대양의 그후◁
(주)오대양 본사가 자리잡고있던 대전 서구 계수원동 176의1은 B가구 대전영업소의 사무실과 하치장이 됐다.
B가구측은 88년 2월 건물소유주 한신금속으로부터 보증금 3천만원 월 5백여만원에 이 건물을 임대했는데 이곳은 사건후 2개월여 폐허로 방치됐었다.
B가구측은 『마땅한 하치장이 없어 임대,사용해왔으나 이곳서 3명이 살해됐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노순호씨(당시 33세) 등 4명이 암매장된 대전 동구 하소동 오대양농장은 엘크사슴 10여마리가 사육되는 농장과 채소밭으로 변했다.
농장 주인 김재용씨(32)는 법원의 오대양자산처분때 경매에 참가,부지와 건물 9백40㎡를 3천3백만원에 낙찰받았는데 암장당시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창고는 모두 철거되고 열무가 자라고 있다.
교주 박순자씨(당시 48세) 등 32명의 시체가 발견된 경기 용인군 남서면 북2리 오대양 용인공장은 1년6개월여 흉가로 버려져 있다가 89년 2월부터 세화정밀이 플라스틱원료 가공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업공사로부터 9억원에 이곳을 인수한 세화정밀측은 시체가 발견된 기숙사의 천장을 모두 뜯어내고 공장과 창고로 사용하고 있으나 곧 모두 철거하고 새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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