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교주 남편,변사현장 첫 발견/오대양사건 돌이켜보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교주 남편,변사현장 첫 발견/오대양사건 돌이켜보면

입력
1991.07.11 00:00
0 0

◎경찰 8시간 부검끝 자살결론/진상규명위 타살주장후 미궁/5공청문회서 권력층 연계등 거론87년 8월29일 하오3시30분 경기 용인군 남서면 북2리 (주)오대양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씨(당시 48세)가 두 아들과 딸 등 가족과 공장직원 등 31명과 함께 변사체로 발견됐다.

전대미문의 집단변사 사건에다 여사장과 이 회사의 종교적 실체,특혜시비,고위권력층과의 관련설 등 갖가지 의혹과 소문을 불러일으켰던 「오대양 사건」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무성했던 궁금증이 거의 풀리지 않은채 서둘러 수사가 종결된 느낌이었고 이후 88년 5공 특위에서 청문회까지 열어 잠시 거론되다 세인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다.

당시 경찰은 집단 자급자족생활을 하며 오대양교의 믿음인 「천년왕국」을 꿈꾸며 생활해온 교주 박씨와 신도들이 채무관계로 인해 정체와 비리가 드러나자 박씨의 교사에 의해 동반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오대양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타살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의혹을 밝힐것을 주장하는 등 이 사건은 의문의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었다.

집단변사체는 대표 박씨의 남편인 이기정씨(57·전 충남도 건설국장)에 의해 발견됐다.

대부분 시체는 공장식당 천장에서 입에 휴지를 물거나 거품을 흘린채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현장에서는 비닐봉지속에 담긴 다량의 가루약과 감기약병 등이 발견됐다.

시체는 28명이 여자,4명이 남자였고 오대양공장장 이경수씨(당시 45세)만이 서까래에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8시간 동안의 부검끝에 ▲사망자들이 옷가지 등으로 대부분 손발이 묶여있고 ▲목졸린 흔적이 있으며 ▲위에서 치사량에 이르는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은 점 ▲직접사인이 질식사인 점을 들어 집단자살이라고 설명했다.

즉,여사장겸 교주인 박씨의 명령이나 교사에 따라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등을 함께 복용하고 혼미한 상태에서 공장장 이씨가 목을 졸라 「확인살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자살·타살여부보다 관심을 끈것은 한국판 「인민사원 대학살극」으로 불린 이 사건의 주역 박씨가 경영했던 오대양회사의 실체와 권력층과의 관련설,집단 동반자살을 가능하게했던 종교적인면 등이었다.

대표 박씨는 대전 서구 가수원동에 민속공예품제조회사인 오대양과 공영정밀,육아원 등에 1백50여명의 종업원 어린이 학생을 수용하고 직접 채소 등 농작물을 경작하며 자급자족하는 폐쇄적인 공동생활을 해왔다. 또 말세론과 예수재림 교리를 내세워 자신을 따르는 신자만이 천국에 갈수있다는 신앙을 내세웠다.

사회사업가로 지역사회에 알려지기도 했던 박씨는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채를 끌어들였으며 사채를 갚기위해 다시 사채를 쓰는 자금압박속에 1백억원에 가까운 빚을 지게됐다.

박씨가 거액의 사채를 동원할 수 있었고 오대양이 중소기업 특혜수출업체로 지정됐던 점,당시 고위관리들이 이 회사를 수시로 방문했고,당시 전경환 새마을중앙본부 회장과도 교류했던 점 등으로 5공의 비호를 받아온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렀고 수사역시 서둘러 끝낸점 등은 이 사건의 미스터리를 더욱 증폭시켰었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은 전혀 풀리지 않은채 경찰은 결국 사이비종교 집단의 맹신도들이 교주와 함께 동반자살이라는 죽음의 종교의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수사를 종결지었다.<이창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