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후 강제통합 「유고」로/「대세르비아」 세력 테러통치로 알력커져/2차대전중 빨치산 투쟁아래 민족단합/티토사망이 「해체」 서곡/갈등의 70년사근세이래 발칸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분쟁의 원천이었다. 발칸의 동요는 곧 유럽의 위기를 초래했으며,수백만명이 전사했던 1차대전 발발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인들에겐 발칸의 중심축인 유고가 내전의 벼랑에서 허덕이는 현실이 결코 남의 일일수 없다.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유고사태의 연원과 주변국들의 대응 등을 두차례에 걸쳐 분석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유고연방군의 대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무력행사로 「유럽의 화약고」 발칸이 다시 폭발한 지난 6월28일은 원래 유고의 각 민족들에게는 「운명의 날」로 불려왔다.
1914년 이날 「대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부부를 암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럽대륙의 세력균형 조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갈등을 빚고있던 유럽국가들에 빌미를 제공,1차세계대전을 촉발했다.
이 1차세계대전은 이 지역의 지배세력인 합스부르크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붕괴시켜 구질서를 무너뜨렸다. 전승국들은 이때 합스부르크제국의 유물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왕국에 강제로 통합시켜 유고왕국을 탄생시켰다.
1921년 이날에는 세르비아인들이 가까스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유고의회가 세르비아의 영구적인 정치적 주도권을 명시한 헌법을 통과시켰다.
그후 세르비아왕가 출신의 알렉산더왕은 의회를 해산,군주독재를 확립했다. 이때 이미 크로아티아와 마케도니아민족의 독립비밀결사가 조직돼 반기를 들었으며,세르비아왕가는 세르비아인들이 주축인 군과 경찰의 테러통치로 지배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독립주의 세력은 1934년 알렉산더왕을 마르세유에서 암살했다. 이때부터 유고는 「유럽의 화약고」로 변했다.
영·불을 중심으로한 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들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적대국이었던 세르비아에 강제통합시킨것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독일을 포함하는 「범게르만」의 세력권을 영구히 축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유럽의 전통적인 「세력균형」 정치는 민족과 종교,언어 등이 다른 6개국 24개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는 「예술작품」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 강제통합조치에,슬라브계이면서도 게르만의 정치·언어권에 속해왔던 슬로베니아 민족은 세르비아 등의 「남슬라브 형제들」과의 독립국가 형성으로 게르만의 동화흡수력에서 벗어날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니 이 기대는 세르비아의 독재로 무산됐고,나치독일의 대두는 유고를 다시 격동과 기구한 운명속으로 빠뜨렸다.
유고는 나치의 위세앞에 히틀러의 주축동맹에 가입하는 현실노선을 택했다. 그러자 슬라브의 맹주 소련은 세르비아 출신의 시모비치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친나치 정권을 전복시키고 시모비치정권과 동맹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나치독일은 41년4월 유고를 점령,크로아티아에 친나치 통치기구인 「우스타샤」를 설치했다. 그리고 괴뢰정부를 주도한 유고파시스트동맹은 스스로 독일의 보호령을 선택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유고연방의 창건자인 티토였다. 티토는 파시스트와 세르비아 왕당파에 맞서 빨치산 투쟁을 주도,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마케도니아 및 알바니아 등 적대적 민족들을 「적기」 아래에 단합시켰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혼혈인 티토는 2차대전 승전후 통일임시정부를 유고연방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어느 한민족이 강력해지는 것을 막기위한 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에 따라 과거 주도세력이었던 세르비아는 알바니아인 다수지역인 코소보주의 자치를 허용해야 했다. 또 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이때부터 「대세르비아」 세력의 불만은 싹텄다.
한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도 티토의 강제명령에 따라 경제적 후진지역인 세르비아 등 다른 공화국의 개발기금으로 막대한 부를 이전해야 했다.
지난 80년 「유고연방의 아버지」 티토의 사망은 연방붕괴의 서곡이었다.
티토사후 등장한 세르비아의 대중정치가 밀로세비치는 세르비아의 패권확립을 공개표방,연방정부와 군의 지배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역시 세르비아인인 마르코비치 연방총리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공화국간 격차확대는 슬로베니아,크로아비아의 독립의지를 부채질해 왔다.
세르비아의 억압속에서 경제적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벗어나자는 당연한 욕구였다.
밀로세비치 등 세르비아공화국 지도부가 연방해체를 극력 저지하고 있는 주된 요인은 이같은 경제적 의존관계가 단절되는데 대한 우려다.
빨치산 출신으로 「마지막 티토주의자」로 불리는 마르코비치 연방총리와,친나치우스타샤에 온가족이 학살당한 아지치 연방군 참모총장 등 군부는 티토의 유산승계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역시 세르비아의 지배권 및 기존체제고수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유고역사는 갈등과 적대가 실로 운명적임을 증언하고 있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베를린=강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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