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중 자주 들은 말중의 하나가 「말없는 다수」였다. 중산층·중간층·중심세력으로 불린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5월의 소용돌이는 일과성바람으로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 관측대로,그 세차던 소용돌이는 시들어 버렸다. 5월의 거리를 지배했던 세력들이 상당한 충력을 결집한 것은 틀림없었으나,스스로의 과격노선탓에 「말없는 다수」를 설득하는데는 실패한 것이다.비슷한 맥락에서,6월들어 자주들은 말은 「시민」과 「유권자」였다. 선거 망국론의 경고까지 나온 선거중반의 과열과 혼탁 속에서,공명선거를 위한 시민운동과,바른 선택을 위한 유권자들의 자각이 되풀이 강조된 것이다. 말하자면 「시민」과 「유권자」라는 이름의 「말 없는 다수」가 다시 기대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명선거를 위한 시민운동이,더할데 없는 명분과 가능성을 결집했음에도 불구하고,6월의 「말없는 다수」를 설득하는데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아무래도 의문스럽다. 지금은 뚜껑을 연 선거결과가 그런 의문의 근거가 된다.
무엇보다도 59.8%에 머문 투표율이 그러하다. 이 투표율의 의미를 지금 속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선거종반의 모든 여론조사가 하나처럼 70% 이상의 투표율을 점치게 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이처럼 낮은 투표율이 이변에 가까운 것인 것 만큼은 틀림이 없다. 또 선관위는 물론 시민운동측의 기권방치 캠페인이 제법 활발했던 점,그리고 여·야당이 서로 높은 투표율이 자기네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여,제각기 투표참여를 독려했던 선거 막바지 형세를 생각해서도 58.9%의 투표율은 아무래도 뜻밖이다. 결국 여·야,그리고 시민운동도,6월의 「말없는 다수」를 움직이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보다,이처럼 낮은 투표율속에 나타난 선거결과는 또 어떤가. 선거 자체는 그런대로 큰 말썽없이 끝났고,참패한 야당도 이를 받아 들인다니 다행이지만,그 선거결과가 그려놓은 정치구도는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은 선거전보다 심각해진 지역간편차,선거전보다 심화된 여대야소의 불균형이다.
이 선거결과를 더욱 걱정스럽게 보는 까닭은,이번 광역선거가 그 것만으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대권경쟁을 함축한 일련의 선거시리즈중의 한 전환점과도 같다는데 있다.
「말없는 다수」에 기대를 걸었던 측에서 본다면,기초의회광역의회국회의원선거를 거쳐,자치단체장·대통령선거에 이르는 정치과정은 그야말로 선거혁명의 길이어야 한다.
그것이 안정속의 개혁민주화의 길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은,기초의회선거보다는 광역의회선거가 정당간의 정치놀음으로 열도와 혼탁을 더했다는것 뿐이다. 이에 비추어 그야말로 정당끼리의 싸움인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과열·타락의 도가 더 심해지고,드디어 대통령선거가 되어서,그야말로 대충돌을 일으킬까 두려운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광역선거로 우리는 그 대충돌코스에 접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바야흐로 여권은 여권대로,야권은 야권대로 새로운 집안 대권싸움을 벌일 것이 거의 틀림없다. 이 코스를 회피하는 길은 1차적으로 정치권이 찾아야겠지만,그것이 결국은 대충돌에 이르는 파국적인 우여곡절이나 빚어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가능성이다. 기초와 광역 두 차례 선거에서 시민운동의 한계를 본듯도 하지만,이제라도 그 실패의 원인을 짚어서,「말없는 다수」를 동원할 수만 있다면,시민운동으로 선거혁명의 길을 열 수가 있고,그것만이 충돌코스를 비켜 가는 유일한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민운동에게 요구되는 것은 선거기간에 활동하느라,스스로를 선거법에 묶는듯했던 운동방법과,몇사람의 의견을 집약하여 국회에 청원이나 하는,명망가끼리 같은 운동방식을 벗어나,운동을 상시화하고 대중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선거의 끝장이 곧 공명선거운동의 끝장이 아니라,오히려 그 시점이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다음 선거가 닥치기전에,선거제도를 개혁할 운동을 다시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개혁의 안목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시민운동의 선거참여 길을 트는 것,공명선거를 담보할 선관위의 위상을 높이는 것,시민운동과 선관위의 연계를 가능케 하는 것 등은 절대 빠뜨릴 수가 없다. 선거의 본뜻을 살릴수 있는 중선거제·비례선거제 등의 도입 등도 충분한 검토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같은 개혁운동의 실효는 최대공약수적인 개혁안을 마련해,「말없는 다수」를 동원할 수 있을때만 담보할 수가 있다. 그들로부터 백만명,천만명의 지지 서명을 받을수도 있고,그들로 하여금 집회와 시위를 조직케할 수도 있다. 그들로부터의 비용 갹출도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압력을 정치권이 실감케 하는 것이다. 그 압력은 개혁안에 대한 국회의원 각자의 찬반을 다음 선거의 투표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극대화할 수가 있다.
요컨대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법 개정을 여·야당 정치놀음에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유권자 부재의 선거구 나눠먹기식의 협상은 엄두도 못 내게 해야한다. 그만한 압력을 집적할만한 시민운동을 조직하여 완충역할을 담당하고 선거혁명의 길을 열어야 한다.
5월의 「말없는 다수」는 말하자면 선동의 대상이었다. 6월의 「말없는 다수」도 동원의 대상으로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말없는 다수」는 스스로 「행동하는 다수」로 탈바꿈할 때가 되었다. 그 계기는 기초와 광역 두차례 선거에서 싹튼 「시민운동의 핵」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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