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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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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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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문화부 장관께­.옛 일본 총독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어떻게 할것이냐에 대강의 결론이 나는것 같아서,그 사이 미뤄왔던 말을 몇마디 하겠습니다. 그말이란 노태우 대통령이 작년 10월 총독부 건물을 어디론가 옮겨 복원했으면 한다고 했을 때의 놀라움과,그 말을 받듯,문화부가 중앙박물관을 경희궁(전 서울고) 터에 신축할 서울시립박물관에 임시로 옮겼다가,중앙박물관을 새로지어 다시 옮기기로 했다는 등의 보도를 읽으면서 느꼈던 당혹감에서 연유한 것이었습니다. 줄여말하면,이 나라가 웬 돈이 그리 많아서,또 그 알량한 총독부 건물의 무엇이 그리 대단해서,그 추물을 이전·복원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무엇이 그리 급해서 5천년 유물을 피난 보따리 싸들고 다니듯 해야하는 것인지를,장관에서 꼭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면,그런 놀라움이나 당혹감은,한낱 기우와도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여론을 수렴하기로 하고,그 결과(한국일보 6월14일자 15면)에 따라 10년계획으로 국립박물관을 옮길 것이라 하니,걱정할것이 없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총독부 건물의 보존가치를 말하는 이들이 지금도 없지를 않고,대통령이 말한 이전·복원론도 꼬리를 끄는것 같아서,좀 미심한점이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새삼 장관에게 글을 쓰는 까닭이 이런데 있습니다.

내가 미심쩍다는 것은,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으니까,국립박물관을 옮겨야겠다는 투의 발상 그자체에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장관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해방뒤 우리가 지은 박물관 치고 말썽이 없었던 곳도 별로 없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일본의 신궁을 본 떴다고 해서 시비를 불렀던 부여박물관 입니다. 당장 철거해야 한다는 힐난을 무릅 쓰고 68년에 완공한 그 박물관은,93년 대전엑스포에 맞추어 철거·신축한다고 해서 공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부여박물관과 거의 같은 무렵에 진행했던 경복궁 중앙박물관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별상전 등 우리나라 고건축들을 주워모아,현대식 3층 기단위에 올려놓은 이 박물관 건물은,그 미학적인 가치와 기능면의 결함이 있다고해서,설계를 4번,시공업자는 8번이나 바꾸는 산고끝에 72년에 완공을 보았습니다. 여타 경주,전주 등의 박물관도 비슷한 말썽을 겪었습니다.

이 다음이 지금의 중앙박물관입니다. 역시 정부의 느닷없는 결단으로,총독부자리 중앙청을 뜯어 고쳐 85년 여름에 박물관을 옮긴 것입니다. 마음 먹고 지은 경복궁 중앙박물관의 수명이 겨우 14년,지금 박물관은 몇백억원을 들인지 5년을 못넘기고 이전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문화행정이라는 것이 이래도 되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짓고 허물고 하는 사이의 비용을 따지지는 않더라도,우리의 문화행정이 왜 이러했던가­하는 반성은 꼭 있어여 합니다. 정권차원에서 문화를 위하는 척 하거나,행정이 업적을 앞세운 나머지의 졸속과 강행이 이런 결과를 빚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박물관 시설에 따른 그많은 말썽에서,전문가들의 의견이 그리 믿을 것이 못되는듯 했다는 점도 지적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부여 박물관 설계의 일색시비를 빚었던 전문가는 바로 경복궁박물관의 맹렬한 비판자였고,경복궁 박물관의 설계자는 부여박물관의 맹렬한 비판자였습니다. 이들 전문가들끼리의 관계는 국외자가 알수 없는 것이겠으나,그중 한 사람은 지금의 중앙청 박물관 계획이 확정발표되자,이런 글을 신문(동아일보 82·3·17)에 발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나는 10년전만해도 이 건물을 헐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 것을 헐어 버릴때 그 돌을 조각조각 내어 포도용으로 길에 깔고 밟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글에서 그는,그런 생각이 바뀌었음을 말하고,총독부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있습니다. 얼마뒤 그가 중앙청 내부설계를 맡은 것으로 밝혀졌던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문화행정은 어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문화행정이란 대통령 지시만으로도 안되고,민족정기만으로도 안되고,전문가 의견에 전적으로 기댈 수도 없는 것 같아서 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지금 논의가 되고 있는 옛 총독부 건물­중앙박물관 문제에,또다른 말을 덧붙이기가 좀 무엇합니다만,기왕에 화제를 꺼낸 김에 몇마디만 사견을 적어두겠습니다. 그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먼저,지금 중앙박물관 시설은,아무래도 비좁고 부적당하니,새 박물관을 짓기로 합니다. 그 것도 몇년을두고 기획하고 설계를 하고,또 몇년을 걸려 짓고 유물을 옮기고­이렇게해서 그야말로 21세기 통일한국에 부끄럼이 없는 박물관을 짓습니다. 그터는 용산 8군자리가 안성 맞춤입니다. 이때문에 경복궁 복원이 몇해 늦어도 상관할것 없습니다. 그 비용은 당연히 국고에서 부담합니다.

총독부건물 문제는,그런 뒤에 다시 검토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때 여론에 따라 철거여부를 결정하면 그만이겠습니다만,이전·복원만은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 세금을 따로 들어가면서까지 그 추물을 보존합니까. 오히려,그 건물을 헐어낸 돌하나 하나에 총독부 돌임을 새겨,국민들에게 파는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 같으면,비싼값을 치르고라도,그 돌을 사다가 대문앞에 깔아 놓고 아침 저녁 밟고 다니겠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을 박물관 신축기금을 벌충하는데 쓰든지,다른 문화사업 기금으로 쓰든지,정부가 알아서 하면 될것입니다.

이상 기발할 것도 없는 사견입니다만,장관의 일고를 바라마지 않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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