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모스크바 다음으로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레닌그라드이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1시간20분 거리인 레닌그라드는 소련 제2의 도시이자 1백여개의 섬이 5백여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북방의 수도」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그리고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인구 5백만의 이 도시는 1703년 표트르대제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관문도시로 세웠는데 러시아의 유럽화를 시도했던 표트르대제 답게 자신의 이름을 독일어 발음으로 붙여 페테르스부르크라고 명명했다. 2백10년간 불려온 페테르스부르크는 1914년 러시아어식 발음인 페트로그라드로 개칭되었다가 10년 뒤에는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2차대전중 나치독일군에 의해 9백일간 봉쇄되어 50만명이 굶어죽으면서도 끝까지 사수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이름이 세번이나 바뀐 이 도시가 다시 개칭될 모양이다.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페테르스부르크라는 구명으로 되돌아가자는 안이 55%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레닌이라는 이름이 싫다는 것이다. 개명주장은 그동안 소브차크 시장을 비롯하여 주로 젊은층에서 개혁바람을 타고 거세게 나왔으나 노년층에서는 극구 반대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자신도 『레닌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며 레닌그라드라는 이름만 들어도 파시즘과 싸워이긴 인민들의 영웅적인 일화를 상기시킨다』고 반대했다. ◆표트르대제와 레닌간의 역사적 대결양상으로 관심을 모았던 12일의 투표는 일단 표트르의 판정승으로 끝난 셈이다. 그러나 이 투표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소연방의회나 러시아공화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어느쪽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느냐는 문제로 고르바초프와 소브차크가 정면대립하고 있어 레닌그라드 개명은 또 한차례 진통을 겪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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